[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존 와츠 감독, 2019)은 12살 이상 관람 가 등급에서 보듯 청소년 취향이 다분하면서도 마블의 우주관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작은 어벤져스’이기도 하다. 5년 전 타노스의 블립으로 우주 인구의 절반이 사라진 뒤 6개월 전 어벤져스의 활약에 의해 사라진 생명들이 부활했다.

사이클론으로 멕시코의 한 마을이 초토화되자 쉴드의 퓨리와 힐이 현장에 출동해 뭔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블립 덕에 아직 16살인 피터는 5년 전 우주 공간에서의 치열했던 전쟁에 넌더리가 나 평범하게 살며 엠제이와 사귈 것에만 집중한다. 이번에 학교가 마련한 유럽 여행은 절호의 기회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해피가 나타나 퓨리의 전화를 받으라고 하지만 거부한다. 피터가 엠제이에게 접근하는 걸 도와주겠다던 네드는 외려 제가 베티와 사랑에 빠진다. 게다가 피터가 시간 안에 갇힌 사이 코 흘리던 후배 브래드는 늠름하게 자라 엠제이에게 접근한다. 첫 여행지는 이탈리아 베니스.

아름다운 물의 도시를 관광하는데 갑자기 물로 이뤄진 거대한 괴물이 등장해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당황한 피터가 뮤지컬 가면만 쓴 채 사람들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는데 갑자기 한 영웅이 나타나 물 괴물을 제거한다. 그는 미스테리오로 불리는 슈퍼히어로인데 이미 퓨리의 쉴드와 공조하고 있다.

그는 다른 지구에서 왔다고 한다. 즉 다중우주가 존재하는 것. 피터의 호텔방에 퓨리가 나타나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우주 빌런 엘리멘털이 지구를 노리고 있다며 팀에 합류할 것을 강권하지만 피터는 거절한다. 스타크는 피터에게 증강 현실 보안 및 방어 시스템인 선글래스 이디스를 남겼다.

이디스가 가진 힘은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죽은 스타크를 대신할 새로운 아이언맨이 누가 될지 궁금해하고, 아이언맨의 멘티인 스파이더맨을 가장 강력한 후보로 손꼽는다. 하지만 치열한 전쟁에 신물이 난 피터는 자신은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그저 평범한 이웃일 뿐이라는 생각 탓에 회의적이다.

학생들의 마지막 여행지인 프라하에 불의 괴물이 나타나고 나이트 몽키로 위장한 피터와 미스테리오가 교호적으로 괴물을 물리친다. 하지만 피터의 활약은 미미했고, 사실상 미스테리오 혼자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페에 앉은 피터는 뭔가 결심한 듯 미스테리오에게 이디스를 건네는데.

엠페도클레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매우 노골적으로 대놓고 웅변한다. 엠페도클레스는 현실계를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봤다. 영화에 등장하는 엘리멘털(기본적, 자연적)의 괴물이 바로 그렇다. 엠페도클레스는 물질계를 공처럼 둥근 형태로 봤다. 미스테리오는 헬멧과 다른 원형 투명관을 쓴다.

엠페도클레스는 BC 5세기 중반에 활동했는데 당시, 혹은 후대 철학자까지 포함해 굉장히 과학적이었으면서도 오르페우스교의 신비주의를 동시에 가진 학자였다. 그는 공기가 독립된 물질임을 발견했지만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 분화구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

미스테리오는 원래 스타크 인더스트리의 과학자였다. 하지만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환각의 세계를 창조한다. 엠페도클레스는 플라톤보다 동굴 이론을 먼저 주장했다. 우리가 보는 세상과 사물은 실체가 아닌, 불빛에 의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라는 이론은 미스테리오의 가상현실이다.

과학은 어머니인 철학을 제치고 현대 세상만사의 바로미터가 됐다. 그렇다고 과학이 마냥 절대적일까? 이 작품에서 보듯 증명이 기본인 과학이 증명조차 거짓으로 꾸며 속인다면 과연 금과옥조일까? 그건 어쩌면 스타크의 과학에 도움을 받았지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피터의 고민일지도 모른다.

이상 현상을 과학자가 ‘마녀 짓’으로 보는 것 역시 과학과 신비주의의 결합이다. 엠페도클레스는 공상적 진화론의 시각에서 적자생존을 인류 존재의 현상으로 풀어냈다. 스타크의 생존엔 존재감이 전혀 없었던 인물들이 그의 사후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다는 내용이 그런 공상적 진화론과 다르지 않다.

“신화가 사실이었다. 신화였던 토르를 이제 물리 시간에 배우니까”라는 대사 역시 과학과 신비주의가 공존하는 엠페도클레스의 이원론이다. 이렇듯 세상은 의문투성이다. 루오모 델 미스테리오는 정체불명의 남자란 뜻이니. 그래서 “요즘 같은 세상에선 믿을 사람이 필요해”라는 대사가 폐부를 찌른다.

믿음과 더불어 강조하는 메시지는 선택이다. 아직 어린 피터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퓨리는 “제대로 할 건지, 말 건지 선택해”라고 권면한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멘토가 필요하고,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암시가 노골적이다. 엠제이가 좋아하는 꽃이 블랙 달리아라는 센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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