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 사진 출처=픽사베이

분노 단계의 증상들

① 극심한 충격과 혼란:

심각한 재해를 겪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외상 후 증후군’ (PTSD: Post-Traumatic Stress Syndrome) 상태에 빠진다. 배우자의 외도는 (이런 재해들과 마찬가지로) 상처 배우자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처 배우자들은 소위 ‘외도 후 증후군’(PISD: Post-Infidelity Stress Disorder)을 앓게 된다. 그 주요 증상은 사건에의 몰두, 과민반응, 감각 둔화, 그리고 정서적 및 신체적 이상 등이다. 이들이 흔히 호소하는 심리적 고통을 예를 들자면: 대낮에 발가벗겨져서 성적 모욕을 당한 것 같은 수치심과 분노, (잘못은 분명히 외도 배우자가 했는데, 그것도 몰랐고 또 통쾌하게 항거하지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 지금껏 나름 부끄럽지 않게 살았는데 한순간에 비웃음과 함께 동정의 대상이 된 느낌,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와 불안 등. 정말 끔찍한 경험이지만, 아플 때 비명이 나오는 것처럼 이 모두가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충격 후의 당연한 것이라는 점이, 사태의 해결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위기에 빠졌을 때 허둥대는 것은 더 위험할 경우가 많다. 쉽지 않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하여 상황을 파악해야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런 지옥에 빠진 당신이 지금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상대를 응징하는 것보다 먼저)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을 추궁하는 것은 다음에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도 관련 스트레스 반응

▲ 외도 관련 스트레스 반응

② 비이성적 행동들:

충격과 분노 상태에서는 누구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판단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그러나 상처 배우자들 대부분은 외도를 알게 되자 마자 곧바로 외도의 진상을 확인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많은 시도를 한다. 외도와 관련한 추적과 자료 요구, 외도 사실의 폭로나 이혼 위협, 복수심에서 비롯한 경제적 및 신체적 압박, (외도 상대나 외도 행각의 세부 사항에 대한) 끊임없이 솟아나는 많은 질문들, 그리고 외도 배우자의 의도와 앞으로의 결심 등 외도 배우자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는 추궁들…

상처 배우자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당연한 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장기적인 관검에서 보면, 이 단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신의 절망과 분노는, 안타깝게도 그 어떤 수단으로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외도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서, 그 어떤 대답도 당신의 만족보다는 반대로 분노를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③ 비난, 공격, 추궁과 많은 요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 배우자들이 이런 욕구를 떨치지 못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이유를 알면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지식 만능주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잘못에 대해서 합당한 결말이 지워지면 수긍할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외도에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복잡한 원인(遠因)과 계기가 있다. 이런 것들을 당장 밝혀 내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보자. 반사적으로 허우적거리는 것은 더 위험하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다시 떠오르기를 기다리거나, 더 위험한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을 데를 찾아야 한다. 잘못과 이유를 따지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④ 끝임 없는 자책:

나는 왜 미리 몰랐을까, 내가 부족한 점이 뭐였을까, 그것도 모르는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하는 자괴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자책은 옳지도 않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외도는 분명히 상대가 한 잘못이다. 설령 자신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런 것은 사태가 진정된 후에 살피고 보완할 일이다. 길을 걷다가 차에 치여 중상을 입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무엇부터 해야 할까? 사고 차가 뺑소니치지 못하게 붙잡을까? 혹시 내가 무단 횡단한 것인지 반성부터 해야 하나? (특히 여성의 경우) 자신의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바로잡아야 하나? 모두 아니다. 자신의 의식을 붙잡아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2차 사고를 당하지는 않겠는지, 지금 움직여도 되겠는지 아니면 타인의 도움을 기다려야 하는지 살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이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상처받은 자신을 돌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직후의 상처 배우자들에게 강조할 점이 있다. 아직은 배우자의 외도를 추적하거나 해결하려고 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고 눈 감아주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보호와 위로다. 당신 혼자만의 의지나 노력으로 극복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신경안정제 처방을 포함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및 전문가와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외도와 관련한 사실 확인과 대응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한 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오히려 훨씬 잘 할 수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만 꾹 참고 견디며 다음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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