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의 문화오픈런]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캐치프레이즈만 남기고, <쇼미더머니 4>가 종영했다. 방영 전부터 프로듀서와 참가자의 라인업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프로그램이라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 퇴장이다. 참가자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음원차트에서 선방하고 있지만, 전 시즌과 비교해보았을 때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차갑게 식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엠넷의 한 관계자는 <쇼미더머니>가 힙합의 대중화를 이루었다고 자찬했지만, 이번 시즌은 일부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힙합 거부감’까지 불러일으키며, 좋은 ‘힙합’보다는 굵직한 ‘논란’만을 남겼다.

▲ 사진 : Mnet 방송화면 캡쳐

사실 <쇼미더머니>는 힙합에 대한 장르적 고민과 음악성을 보여주는 음악프로가 아니라, ‘오디션-쇼프로그램’이다. 일명 ‘악마의 편집’이라는 편집술로 참가자들과 프로듀서들의 표정과 발언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는 것은 엠넷 쇼프로그램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마의 편집’으로 한순간에 누군가는 동정표를 얻고,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을 한두 번 목도한 것이 아니다. ‘악마의 편집’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만나며 날개를 달았다. 가사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고, ‘디스’가 자연스러운 힙합 문화에서 ‘악마의 편집’은 불씨를 키우는 불쏘시개였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와 같은 힙합 오디션-쇼프로그램은 출연자 간의 갈등이나 돌발 상황을 연출하며 시청자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시청률과 대중의 관심은 논란에 뒤따라왔고, 그에 힘입어 엠넷은 ‘힙합 쇼 프로’를 계속해서 재생산해내고 있다.

악마의 편집은 ‘스토리텔링’의 일환이다. 많은 오디션-쇼프로그램이 참가자들의 실력과 무대 이상으로 공들이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오디션-쇼프로그램의 서사는 프로레슬링의 서사 공식과 흡사하다.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선 선인(Face)과 악인(Heel)의 이분법이 존재하고, 링 위의 선수들은 맡은 역할의 성격적 평면성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들은 우직함/교활함, 정의로움/야만적인과 같은 역할의 성격을, 퍼포먼스와 발언, 무대매너를 통해 외면화한다. 링 위에서 그들은 단순히 실력만을 겨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수, 삼각관계 등의 에피소드들이 링 위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 스토리텔링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것은 ‘정의’라는 윤리적 개념이다. 링 위의 대결은 날 것의 경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쇼이다. 그런 점에서 오디션-쇼프로그램의 세계는 프로레슬링의 세계와 상당히 닮아있다.

▲ 사진 : Mnet 방송화면 캡쳐

이번 시즌의 <쇼미더머니>는 최악의 ‘Show’였다. 쇼의 몰락은 서사의 붕괴에서 시작되었다. <쇼미더머니 4>에서 제작진이 스토리텔링에 가장 공들인 참가자는 송민호와 블랙넛이다. 아이돌 출신에 호감형 외모를 가졌으며 많은 대중의 관심을 확보한 송민호와 언더 래퍼로 호감을 주지 못하는 외모에 불쾌감을 주는 가사와 퍼포먼스를 일삼는 블랙넛의 대결구도는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서사 구도이다. 이들은 각자 ‘선인(Face)’과 ‘악인(Heel)’의 역할을 외면화했으며, 대중 또한 그 흔한 스토리텔링을 잘 따랐다. 대다수의 시청자가 송민호에겐 응원을 블랙넛에게는 야유를 보냈고 둘의 맞대결을 기대했다. 엠넷이 감독인 ‘힙합 대하 로망스’는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스토리텔링은 송민호의 ‘가사논란’으로 무너진다.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는 많은 대중의 공분을 일으키며 링 위의 송민호는 ‘선인’으로서의 평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는 관객이 원하는 액션을 수행하지 못하며, ‘송민호 vs. 블랙넛’은 ‘히어로 vs. 안티히어로’ 가 되지 못했다. 둘을 감싸던 선악의 스토리텔링이 전복되고, 둘의 대결은 그저 '악인'과 '악인'의 싸움으로 인식되었다. 이로써 <쇼미더머니 4>의 서사는 정의를 구현할 힘을 잃었다. <쇼미더머니 4>를 둘러싼 메인스토리의 힘이 붕괴됨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쇼가 구축한 세계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감은 없었다.

<쇼미더머니 4>를 지탱하던 메인 서사가 붕괴되자, 쇼는 힘을 잃었다. 쇼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던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복선도, 극적인 전복도 되지 못한 채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뒤늦게 다른 참가자들의 서사와 대결구도를 만들어봤자, 시청자는 이미 쇼에 김이 샌 지 오래였다. 그래서 오디션-쇼프로그램의 대미인 결승 또한 큰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 ‘힙합 대하 로망스’는 힘을 잃은 ‘읽히지 않는’ 이야기로 전락했다. 그리고 논란은 많았지만, 재미는 있었던, ‘불량식품’ <쇼미더머니>는 이젠 ‘노잼’이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되었다.

<쇼미더머니 4>가 초라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서 내려왔고, 이제 그만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종영 이후, 단순히 재미의 여부뿐만 아니라, 약자를 비하하고 욕설만 일삼는 힙합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엠넷은 화제의 카드인 <쇼미더머니>를 버리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선 더는 악마의 편집과 논란으로 프로그램의 명맥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 장르로서의 힙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쇼미더머니>는 애초부터 쇼프로그램이었고, 아마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만 <쇼미더머니 4>의 부진은 단 한 가지 사실을 공고히 했다. ‘힙합’이 없는 쇼는 팔릴지 몰라도, 재미가 없는 쇼는 팔리지 않는다는, ‘Show'라는 세계의 자명한 섭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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