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윤의 베짱이 ‘문화찬가(撰加)’] 2016년 초,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 나왔다.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세 번째까지 이어오고 있는 시리즈물 <응답하라>가 보여준 1988년도의 세계가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응팔>이 보여주는 1988년도의 세계는 지금의 한국사회와는 사뭇 다른 가족적이고, 이웃 간의 애정 어린 교류가 넘치는 쌍문동 골목이다. 그리고 방영 전 ‘가족극’에 초점을 맞추겠다던 연출자의 발언과 같이, 매회 에피소드들은 ‘가족애’와 ‘이웃 간의 유대’로 점철된다. 성동일, 이일화, 라미란 등의 중견 연기자의 캐릭터와 혜리, 류준열, 박보검 등의 젊은 연기자의 캐릭터가 개성 있게 살아나며, 웰메이드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했다. 그러나 <응팔>은 모두에게 좋은 드라마가 되진 못했다. ‘드라마’가 실패했다.

<응팔>이 보여주는 쌍문동 골목은 판타지적 세계이다. 그 시대의 감성, 그 시대의 노래들이 80년대의 향취를 느끼게 하지만, 리얼리티를 가지고 1988년도의 군상들을 그려냈다고 하기에, 캐릭터와 설정들은 다분히 판타지적이다. 로또에 당첨되어 졸부가 된 라미란의 가족, 이창호를 모티브로 삼은 천재바둑 기사, 의사·공군·스튜어디스와 같은 고소득 직업군. 그리고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이웃 간의 유대와 결국 이웃에서 가족이 되는 설정은 1988년 쌍문동을 판타지적 세계로 구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드라마’임을 시청자는 알고 있기 때문에, 판타지 속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은 그 시대의 향취와 감성을 느끼며 눈물지었다. 

▲ 사진=tvN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응팔>의 마지막 화는 19화까지 쌓아온 드라마적 세계를 무너뜨린다. 흡사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과 같이, 재개발로 인해 무너진 쌍문동 골목과 흩어진 이웃, 그리고 그 시절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은 판타지적 세계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특히 ‘내 끝사랑은 가족입니다’라는 <응팔>의 캐치프레이즈는 가족만큼 끈끈했던 쌍문동 이웃들이 모두 가족이 되거나, 혹은 가족이 되지 않더라도 그 유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나 결국 가족이 되지 못한 이웃들은 철저히 가족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한 오리무중이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이런 것이 현실이고 1988년도의 세계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곳이다’라는 향수가 드라마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의식이라면, 그 향수로 드라마의 포문을 열어야 했다. 첫 화의 이미연의 나레이션으로 연 1988년도의 세계와, ‘돌아가고 싶지 않아’하고, ‘태산 같던 부모님을 보고 싶을 뿐’인 1988년도의 세계는 지나치게 상이하다. 판타지적인 세계에 기대어 그 시대가 보여주는 따뜻함을 기대하고, 드라마 내내 그것을 느꼈던 시청자는 결말에 와서야 갑자기 현실로 복귀한다. 드라마의 구조적 실패다.

▲ 사진=tvN 홈페이지 캡쳐

또 한 가지, ‘남편 찾기’라는 ‘예능적 추리’와 ‘드라마’의 기본인 ‘서사’가 부딪치며, 기승전결이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최택)’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응팔>의 여주인공 성덕선(혜리 분)의 남편 찾기는 뜨거웠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세 번째 오면서 ‘남편 찾기’가 시리즈 고유의 심볼인 것을 시청자는 이미 알고 있고, 또한 전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남편 찾기’는 논란이 있을지언정, 시청자의 분노까진 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응팔>은 달랐다.

응답 시리즈의 로맨스 서사는 화자의 사랑에 누군가가 응답하는 포맷이다. <응팔>의 삼각러브라인의 화자는 김정환(류준열 분)이었다. <응답하라 1997>은 윤윤제(서인국 분)가, <응답하라 1994>는 성나정(고아라 분)이 화자였듯 말이다. 성덕선이 성선우(고경표 분)를 좋아했으나 차였던 사건, 최택(박보검 분)이 친구들 앞에서 성덕선이 좋다고 공개 고백한 사건, 결국 최택이 김정환의 포기를 알고 성덕선에 대한 감정을 보류한 사건 모두 드라마 중반부까지 김정환만이 알고 있었다. 그와 브라운관 밖 시청자는 거의 동시에 로맨스 서사의 갈등 사건을 전달받았고, 카메라는 지극히 친절하게 사건에 대한 그의 반응을 담아냈다. 10화 최택의 공개고백 씬에선,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김정환의 표정을 중심으로 장송곡과 같은 무거운 음악이 깔렸고, 카메라는 책상에서 침대에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장장 6화 동안 계속 잡아주었다. 카메라는 김정환을 따라갔고, 그를 중심으로 한 기승전결의 로맨스 서사는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인지되었다. 6화 동안 그와 함께 고민하고 답답해하던 많은 시청자들은 그가 ‘응답’받기를 바라며 드라마를 지켜보았다.

▲ 사진=tvN 홈페이지 캡쳐

그러나 17화에선 갑작스레 최택에게 각성한 성덕선을 보여주었고, 18화에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김정환에 이어, 결국은 19화, 20화에선 최택과 성덕선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러브라인은 마무리되었다. 로맨스 서사의 화자 김정환과 그를 따라 발단·전개·위기·절정까지 서사를 밟아온 시청자는 그가 응답받지 못한 ‘결말’에 직면했다. 언젠간 해소될 것이라 기대했던-여자주인공과의 갈등 최고조였던- ‘분홍색 셔츠 오해’ 사건은 끝끝내 풀지 못한 채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고, 18화에 이르러 삼각러브라인에서 퇴장한 김정환은 단지 아들로서, 친구로서의 정체성만을 보여준 채로 드라마는 끝이 났다. 6화 동안 화자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면서 해소를 기다렸던 시청자들에겐, 그가 응답받지 못한 결말이 남았다. 최택이 남편인 것에 대한 복선과 화면 연출에 대한 리뷰글이 넘쳐나지만, 분명한 것은 ‘상징’에서 ‘서사’가 나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혹자는 화자인 김정환의 서사를 겉으로 내세우고, 그 이면에서 최택과 성덕선의 감정선이 이어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5화에서 17화에 이르기까지 여자주인공 성덕선의 감정선은 단언하기 어렵도록 모호하게 연출된다. 드라마에서 인물의 감정은 행동과 대사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데, 누군가를 끊고 맺는 감정선을 따라갈 만한 명확한 행동과 대사가 불분명하다.

▲ 사진=tvN 홈페이지 캡쳐

<응팔>은 독립영화가 아니고, 약 8시부터 시작하는 ‘가족극’이다. <응팔>이 전제하는 시청자는 리뷰글을 보지 않고도 모든 감정선을 이해해야만 하고, 복선이 아니라 보여주는 그대로의 서사를 따라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8에 이르러 보여주고자 한 사랑이 로맨스 서사의 화자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야기라면, 18화 이후 퇴장한 화자 김정환의 위치가 불분명한 것이 문제가 되고, 화자를 앞세운 서사가 모두 ‘낚시’였다면 과연 이것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가가 의문이다. 애초에 로맨스 서사의 화자를 성덕선으로 두고, ‘둘째로서의 애정결핍을 극복하고,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녀의 감정선에 따라 세밀하게 보여주었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일이다. 추리를 위해 애매하게 연출된 여자주인공의 감정선은 20화에 이르러 플래시백으로 회수되지만, 많은 시청자들에겐 그녀의 ‘남편찾기’와 성장은 온전하게 이해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드라마의 실패는 개연성과 핍진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각화를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이해하기에는 전체를 꿰뚫는 서사가 없고, 결말은 무책임하다. 설정은 재미와 감동에만 치중되어있을 뿐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진 못한다. 그리하여 <응팔>에서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불분명해진다.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인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향수’인지, ‘응답한 둘의 사랑’인지 ‘응답받지 못한 첫사랑’인지, ‘사랑’인지 ‘우정’인지, ‘가족’인지 ‘이웃’인지 말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부유한 채로 하나로 이야기로 귀결되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응팔>의 모든 캐릭터가 전무후무할 정도로 매력적이게 설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은 흥미롭고, 시청자들을 웃기고 또 울릴 만큼의 힘을 가졌다. 그러나 이것은 ‘드라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속한 장르는, 캐릭터와 추리적 요소, 설정들이 일회적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는 ‘예능’이 아니다. 개연성, 필연성, 당위성으로 구성되어 필연적인 하나의 결말로 점철되는 하나의 이야기인 ‘드라마’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응답하라 1988>은 ‘드라마’가 실패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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