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위원의 오늘보다 나은 세상] 저출생 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글들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고 방치할 수 없는 시점에 와있다는 얘기다.

11월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3년 9월 인구동향도 인구 감소에 브레이크가 없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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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월별 출생아 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22년 5월 2만 7명에서, 23년 9월 1만 8707명으로 감소했다. 계절적 증감 요인을 감안한 전년 동월 대비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합계출산율도 23년 3분기 0.70명으로 전년 동기 0.80명 대비 0.1명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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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지난 3월 28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지난 15년간 280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이 종합계획에 투입됐으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치인 0.78명을 기록했다.“면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저출산 정책을 냉철하게 재검토하고 실패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위는 이날 ‘저출산 문제는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 및 가치관 변화, 경쟁적 사회 환경 등 인식과 사회구조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선택과 집중, 사각지대 및 격차 해소, 구조개혁과 인식 제고, 정책 추진기반 강화 등 4대 추진전략과, 촘촘하고 질높은 돌봄과 교육, 일과 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건강 등 5대 핵심과제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저출생 추세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저출생 원인 진단도 다양하게 나온다. 야마다 마사히로(山田昌弘) 일본 주오대 문학부 교수는 일-가정 양립 정책의 미비, 극심한 경쟁, 과도하게 남의 눈치를 보며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려는 문화가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인구문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가부장제 문화에 따른 여성의 가사 노동과 돌봄 부담 지속, 장시간 노동과 고용 불안, 퇴근 후 계속되는 업무 부담 등을 꼽았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남녀 간 공평한 역할과 관련한 기성세대 교육과 기업문화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 모두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책은 다양하면서도 핵심을 짚어 강력하게 추진돼야 저출생 흐름을 바꿀 수 있다.

데이터 컨설팅기업 ㈜피앰아이가 전국 20~69세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미혼 남녀의 자녀관을 최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가 '출산 생각이 있다'고 답해 고무적이다. 출산을 위한 고려 요인으로는 '경제적 안정'이 70%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고, 출산 기피 이유도 '경제적 부담'(39%)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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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로 지나친 사교육비를 지적하면서 킬러문항 없는 수능을 강조했다. 얼핏 맞는 얘기 같지만 정곡을 찌르지는 못했다. 몇가지 질문을 해보자. 사교육을 받으며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는 뭘까.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서일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거나 앞서기 위해서다. 킬러문항이 없어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 그 이유는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다.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은 천양지차다. 학력 간 임금 격차도 크다. 결국 일자리의 질에 극심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교육을 비롯한 과도한 경쟁의 원인이자 저출생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초등학교 한 반의 학생 중 정규직이 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학부모의 말은 우리 사회의 냉혹한 경쟁을 드러낸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설치한 모성보호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육아휴직·출산휴가 등 모성보호제도가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에 대한 온·오프라인 신고는 6개월간 총 220건이다. 신고 중엔 ‘육아휴직 사용에 대한 불리한 처우’(47건)가 가장 많았고 ‘육아휴직 사용 방해나 승인 거부’(36건) 등 육아휴직 관련 신고가 41%(90건)를 차지했다. 육아휴직 후 퇴사 종용 사례도 있다. 고용부는 조사를 마친 203건에 대해 사업장 행정지도·근로감독 등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솜방망이 대처다.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육아휴직을 불허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명시돼 있다. 결혼 출산 육아휴직 등과 관련해 일가정 양립을 방해하는 잘못된 직장문화를 신속히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정부가 출산휴가 종료 후 별도 신청 없이 곧바로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엄격하게 집행하지 않으면 그럴싸한 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이 아닌, 우리나라 근로자의 80% 이상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의 일가정 양립문화를 정착시킬 의지가 진정 있다면 결혼 출산 육아휴직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자신에게 더 손해라는 확신을 기업주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저출생 문제를 얘기할 때 모델로 삼는 스웨덴을 예로 들어보자.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동수당을 받으면서 교통비 병원비가 무료다. 대학 등 교육비도 부담하지 않는다. 선행학습이나 사교육은 거의 없다. 대신 독서와 놀이 등 취미활동을 많이 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이 더 많다. 적성에 따라 직업학교 등에 많이 간다. 학력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임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극심하지 않고, 누구나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은 할 수 있고 빈부 위화감이 적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처럼 세금도 많이 내는 만큼 복지 수준도 높다. 일 처리가 빨리빨리 이뤄지지는 않는다. 미혼모 등에 대한 시선이 차갑지 않다. 결혼 출산 육아휴직 등을 문제 삼는 기업은 없다. 인구가 1천만명이 채 안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보다 훨씬 높고, 세계적인 기업들도 적지 않다. 부부가 집안일과 육아 분담을 잘 하고, 육아 지원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며, 직장과 사회의 양성평등 수준이 높고, 공․사교육비 등 육아 비용 부담이 적으니 출산율이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는 진짜 심각하다. 신속하고 현명하게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급한 일 처리에 급급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친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 출산율을 감소에서 증가 추세로 바꿨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교육․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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