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위원의 오늘보다 나은 세상]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성 병역 의무화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류호정 전 의원이 지난해 말 여성 군 복무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최근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공약을 발표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금태섭 전 의원과 함께 신당을 창당한 류 전 의원은 “가정에서 성평등을 이루려면 병역 성평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공론화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홍희진 청년진보당 대표는 "여성도 군대 가면 성평등’이란 식의 주장은 한국 사회의 병역제도와 성차별 문제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갈라치기 정치일 뿐”이라며 “우리 군이 인권친화적이고 성평등한 조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과 개선에 대한 현실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찰, 해양경찰, 소방, 교정 등 4개 직렬 공무원은 성별과 관계없이 병역을 마쳐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출생에 따른 병력 부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헌법에 명시된 병역의무를 남성만 부담하는 데 따른 성차별 해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편다. 이를 통해 위헌 판결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의 복원 효과를 노려 20~30대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 비중은 경찰 14.5%, 소방 10.3%(이상 2022년 기준), 교정 8.5%(19년 기준) 수준이다.

이에 대해 병역자원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50~70대 모임인 시니어 아미의 최영진 공동대표(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최근 신문 기고에서 “여성 군 복무 의무화는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 국가적 과제에 배치되는 공약”이라고 반박했다. 최 교수는 “병력이 꼭 필요하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강한 시니어들이 우선적으로 젊은 세대의 몫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징병제와 관련, 국방부는 "검토한 바 없다"면서 "해당 사안은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하거나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식 병무청장은 여성 징집제에 대해 “시기상조이며 사회적 갈등만 부추길 수 있다”면서 문제가 되는 “2030년대 중반 이후의 병역자원 감소는 국방혁신 4.0에서 추진 중인 무인화·과학화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병역 의무화 논란은 1994년 군가산점제 폐지 청원을 둘러싼 온라인 논쟁에서 비롯되고, 99년 헌법재판소의 군가산점제 위헌 결정으로 본격화됐다. ‘여성도 군대 가라’는 식의 주장이 난무하며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국민청원이 이어졌다. 인구 감소에 따른 군병력 자원 감소는 당시에는 거론되지 않았고 최근에 대두되면서 선거철 인기 메뉴로 등장했다. 병역자원 감소 대책으로는 간부 및 민간인력 활용 확대, 모병제 전환, 여군 참여 확대 등이 꼽힌다. 안보 위협을 줄일 필요도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대만 등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한 국가들도 꽤 있다. 미래 전쟁에서는 갈수록 신체적 능력보다 인지적 능력이 중시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최근 발표한 2024 글로벌 파이어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군사력 평가지수에서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한국은 0.1416점으로 5위를 차지한 반면 북한은 36위였다. 2022년 6월 기준 한국 여군은 8.8%(장교 10.9%, 부사관 7.9%) 1만6000여명이다. 주요국들에 비해 여군 비율이 낮은 편이다. 국방부는 여군 비율을 2027년 15.3%(장교 16%, 부사관 14%)까지 높일 계획이다.

미디어파인

현재 지구상에서 여성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10여 개국뿐이다. 이스라엘, 아프리카 6개국(수단, 차드, 에리트리아, 모잠비크, 코트디부아르, 베넹), 중남미 2개국(볼리비아, 쿠바), 북한, 북유럽 3개국(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이다.

팔레스타인 및 주변 아랍 국가들과 수시로 충돌하며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때부터 여성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 복무기간은 2년으로 남성(3년)보다 짧고, 결혼 임신 양심적 병역거부 등 병역 면제가 사유가 많아서 여성 징병률은 40~50% 정도다. 현재 상비군 17만 6천 명 중 여군은 약 30%다.

북한은 2015년 여성 대상 지원병제에서 징병제로 바꿨다. 여성 의무복무 기간은 17세부터 7년으로 남성(10년)보다 짧다.

여성 징병제 도입국은 대부분 아프리카처럼 장기 내전으로 인한 병력 부족국이거나, 쿠바를 비롯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국가들이다.

이와 달리 북유럽국들은 양성평등 강화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병력 부족 해소 및 최고 인재 영입을 통한 안보 능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2016, 18년 선택적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징집 대상자 전원이 아니라 그중 필요 인원만 선발한다. 북유럽의 여성징병제 도입이 여성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을 국내 여성징병제 찬성론자들은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 있다. 북유럽국들은 남녀 갈등 상태에서가 아니라 양성평등 수준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양성평등 강화를 위해 여성징병제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여성 징병제 도입 전까지 국방부 장관은 노르웨이에서 8회 임명 중 5회가 여성이고, 스웨덴에서는 8명 중 남녀가 절반씩 임명됐다. 2013년 당시 여성 국방 장관 에릭센 쇠레이데는 “노르웨이의 가장 강력한 힘은 군대이며, 그 힘이 남성에게만 허락되는 것은 성평등에 어긋난다”며 성 중립 징병제 도입을 주도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징병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방장관이 남녀 번갈아 임명되는 경우를 상상이나마 할 수 있을까?

미디어파인

2003년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스웨덴 핀란드 등 많은 유럽국들은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 시행 중이다. 공기업과 상장기업 임원 중 특정 성별이 60%를 초과할 수 없도록 즉, 여성도 반드시 40% 이상 선임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국회의원 중 여성 비율도 스웨덴 46.4%, 노르웨이 46.2%, 핀란드 45.5%, 덴마크 43.6% 등이고, 여성 장관 비율도 40% 이상이다. 국내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2년 기준 공기업 16%, 상장기업 10%에 불과하다. 여성 국회의원은 19.1%로 조사대상 186국 중 121위, 여성 장관은 16.7%로 111위에 불과하다.

세계경제포럼이 장차관, 관리직, 경제활동참가율, 유사업무 기준 임금 남녀 비율 등 상대적 성평등을 비교하는 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은 23년 0.68로 146개국 중 105위다. 상대적 성평등 수준이 68%라는 얘기다. 노르웨이는 2위(0.879), 스웨덴은 5위(0.815)다.

유엔개발계획이 산모 사망비율, 청소년 출산율, 중등학교 이상 교육 인구 남녀 비율 등 여성의 절대적 삶의 질 수준 위주로 비교하는 성불평등지수에서 한국은 191개국 중 15위다. 노르웨이는 2위, 스웨덴은 4위다.

유엔개발계획이 성별 편견을 측정해 23년 발표한 젠더규범지수 4개 항목 모두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의 비율이 주요 선진국들은 대부분 60~70%를 상회하는 반면 한국은 10.1%에 불과하다. 가사 분담은 개선되고는 있으나 더뎌서 아직도 여성에 편중되고 있고, 심지어 외벌이 여성이 백수 남성보다 가사 시간이 더 많은 실정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교수는 ‘인구감소시대 대안적 병역제도 연구 : 모병제와 여성징병제 쟁점을 중심으로(2022)’라는 연구에서 여군을 확대하거나 징병하려면 특정 보직 제한 철폐, 시설과 장비 등 제반 준비 철저, 사회적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별 고정관념 해소 및 성폭력 예방 등 양성평등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여군의 보직 제한은 해상 대테러작전 등을 수행하는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만을 제외하고 전투, 잠수함 등 대부분 형식상 철폐됐다. 그러나 문호가 개방됐을 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보직 제한 문제는 존재한다.

사생활 보호와 성폭력 예방 등 여군을 위한 위생 및 편의시설은 부대주둔지나 야외훈련장에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군 시설과 장비의 전면적인 개보수가 필요하며 많은 예산과 기간이 소요된다.

최근 3년간(2020~2023년 6월) 발생한 군 성범죄 사건은 총 4233건이나 되며 증가 추세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며, 2차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군 성범죄 피해자들이 비밀유지 및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등을 불신해 신고를 꺼리는 것으로 국방부의 21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드러났다.

여성징병제와 관련한 최근의 여론은 조사 결과에 따라 찬반이 엇갈렸다. 2023년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36.3 대 54.9%(모름 8.8%)로 반대가 많았던 반면 올해 초 SBS 조사에서는 54.1 대 43.3%(기타 2.6%)로 찬성이 많았다. 최근 6년 6회 조사에서 찬성과 반대 우세가 반반씩이다. 여성 징병제 도입 당시 찬성률이 노르웨이는 66%, 스웨덴은 87%였다.

미디어파인

시설과 장비의 준비 부족, 사회적 합의 부족, 성차별적 군대 조직문화 등으로 인해 여성 징병제 도입이나 대규모 여군 확대 등은 현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여군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면서 그에 맞게 시설과 장비를 꾸준히 개선하고, 암묵적 보직 제한과 성별 편견 및 성폭력 만연 등 조직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선결 과제다. 이와 함께 가정과 직장, 사회 등에서 전반적인 양성평등 수준을 높인 뒤 여군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여성징병제 공론화를 시작한 2013년 노르웨이의 성격차지수는 0.8417, 스웨덴은 0.8129였다. 남성 대비 여성의 성평등 수준이 최소한 80%를 넘어선 여건에서 공론화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여성 징병제를 공론화하려면 그에 앞서 23년 0.68에 불과한 성격차지수를 0.8 이상으로 높이도록 매진할 필요가 있다. 여성 징병제보다는 여성 임원 할당제가 우선이란 얘기다. 우리도 가정과 기업에 이어 군대에서도 양성평등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하루 빨리 시작하면 좋겠다. 기왕이면 그 논의를 여성 국방장관이 주도한다면 금상첨화다.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김주혁 미디어파인 논설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초빙교수,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