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산 소악루에서 바라 본 해 돋는 목멱산 아침_목멱조돈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한강을 따라 옛길을 걷다 보면 용산강 지나 작은 섬이 보인다. 가을이 오니 나무 숲속에 사람의 흔적도 보이는 듯하다. 밤섬이다. 밤을 닮아 밤섬인가, 밤나무가 많아 밤섬이었던가? 철새 도래지가 된 밤섬을 지나면 한강은 어느새 하류다. 강폭이 넓어지고 강물이 많아져 바다 같다. 난지도를 지나니 한강변 양쪽에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덕양산과 궁산이다. 한강 하류에서 한양도성으로 가는 길목에 한반도의 목구멍 역할을 한 오래된 지역이다. 이곳이 바로 한강을 사이에 둔 행주(幸州)와 양천(陽川)이다.

행주산과 궁산의 경계는 한강이다

▲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산성의 행주대첩비

덕양산은 달리 행주산이라 하였다. 125m 정상에 성을 쌓아 창릉천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켰다. 행주산성은 군사적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성이다. 행주산 자락에는 큰 나루터도 있어 지역을 오가는 교통의 요지이자 물류의 중심이었다. 임진왜란 때 3대 대첩을 이룬 곳이 행주산성이다. 이 산의 정상에는 대첩비와 대첩비각도 있다. 왕이 한양도성을 나와 행차했던 중요한 지역이다. 한강을 끼고 맞은편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산이 있다. 76m로 낮지만 양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 궁산이다. 산자락에 양천향교가 있어 공자께 제를 올리고, 양천지역의 교육기관으로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는 산이라 궁산(宮山)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과 궁산 산성에 관군과 의병이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였던 곳이다. 궁산은 행주산과 함께 서울을 방어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 76m 정상에 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궁산 소악루에서 목멱산을 바라보다

▲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_양천향교 위 궁산 소악루 해 뜨는 풍경

궁산의 서쪽은 개화산이요, 개화산을 넘어가면 서해가 보이는 계양산이다. 궁산의 동쪽은 한강을 거슬러 해 뜨는 목멱산이며, 옆으로 백악산과 인왕산도 보인다. 한강변에서 낮은 곳이지만 가장 높은 서울의 삼각산과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겸재 정선은 65세에 양천현령으로 5년 동안 이 지역을 오가며 화폭에 그림을 담았다. 저 멀리 목멱산에 해 돋는 풍경과 목멱산 아래 한강에 비친 산과 강, 정자를 그렸다. 버드나무와 어부들이 노 젓는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그리고 행주산과 궁산 사이의 행호에서 낚싯배와 일렁이는 물결을 생동감있게 그렸던 곳이 양천향교 위 궁산이다.

‘새벽 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 우뚝 앉으면, 첫 햇살 목멱산에 오르리라.’

▲ 한강 하류 군사적 요충지_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_행주대첩비 가는 길

목멱조돈(木覓朝暾)으로 궁산 소악루에서 목멱산에 아침 해 돋아 오르는 모습을 새벽녘에 그렸다. 버드나무 가지 느려진 한강변에 우뚝 솟은 목멱산에 막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한폭에 담았다. 250여 년 전 정제된 마음을 한지 위에 그림으로 표현하고, 글로 써 남겼다. 겸재는 66세요, 사천은 71세이었다. 나이를 초월하여 두 마음이 통하는 평생지기의 교감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겸재가 사천에게 선물한 마지막 인생작이요, 목멱조돈은 겸재와 사천의 공동작품이 아니었을까? 겸재 정선은 붓과 먹으로 목멱산 해 돋는 풍광을 그리고 50년 지기 사천 이병연은 글을 써 생생하게 표현했다.

서울에 유일한 향교가 양천향교다

궁산 소악루에서 두물머리 양수리와 행주산성 행호(杏湖)를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있었던 시간이다. 한강의 폭은 양천 궁산 앞에서 넓어진다. 행주산이 있는 행주에 창릉천이 합류하면 그 폭이 더욱 넓어진다. 고기잡이 배가 많았던 이곳을 행호라 불렀다. 행호에서 진상품인 황복어가 많이 잡혀 고깃배들이 넘실거렸다고 한다. 양천은 지금의 양천구와 강서구로 한강변에 작지않은 도시였다. 서울이 아닌 한강 아래 양천으로 해 뜨는 모습과 햇살이 비추니 양천(陽川)의 의미가 이해된다.

▲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비각

양천은 한강아래 강화도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한양도성을 나와 양화진과 공암진을 통해 서울과 행주를 잇는 도시다. 양천 궁산은 김포 개화산의 봉수를 목멱산 경봉수에 알리는 중요한 곳이었다. 한강 아래 양천 궁산에 향교도 있었다. 600여 년 전 양천에 지어져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었다. 양천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다. 서울 근교에 한강 따라 과천향교와 광주향교가 있다. 삼각산 너머 고양향교와 양주향교도 긴 역사를 간직하며 지역의 문화를 지키고 있다. 성균관과 양천향교가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같은 역할을 하였다. 양천향교는 시간이 흘러 서울에 유일한 향교로 되었다. 이 가을에 양천향교와 궁산 소악루에서 글과 그림을 감상하러 한번 떠나볼까요?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물길, 양천(陽川)
행주산과 궁산이 마주한 한강, 행호(杏湖)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궁산에서 겸재 정선을 만나보실까요.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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