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컬처] 안재환, 하일성 극단적 선택 [유진모 칼럼] 하일성.
​[히스토리&컬처] 안재환, 하일성 극단적 선택 [유진모 칼럼] 하일성.

[미디어파인=유진모 칼럼니스트] 2023년 9월 8일. 1966년 배우 이창훈, 1973년 배우 오협, 1983년 배우 최성준, 1991년 배우 박소담 등이 태어났다.

2008(1972~)년 배우 안재환(개구우먼 정선희 남편), 2016(1949~)년 야구 해설가 하일성이 각각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재환은 정확하게 이날 자신의 승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발견된 날짜보다 17일 전인 8월 22일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처음에 안재환의 가족들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했다가, 정선희에게 책임이 있다는 등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제기했다. 계속 정선희를 공격하며 그녀의 명예를 훼손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심지어 경찰이 정선희에게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라.'라고까지 조언했지만 정선희는 "더 이상 일이 확장되고, 더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며 거절했다.

안재환은 2007년 정선희와 결혼한 뒤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먼저 기획사 뷰티유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영화 '아이싱'의 제작에 돌입했다. 2008년 개봉 목표로 총제작비 70억 원 규모로 제작을 진행했으나 2008년 5월 자금난으로 인해 제작을 중단했다.

그는 클럽 사업도 벌였다. 강남구 상섬동에 클럽 레오노를 개업한 뒤 강남역에 2호점을 차렸다. 그런데 이 클럽이 입점한 건물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권리금 명목으로 6억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자 동업자가 이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안재환에게 민사 소송을 걸었고, 이로 인해 삼성동 본점이 압류 조치되었다. 그러자 안재환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이 채무 상환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황이 급변하며 악화됨으로써 안재환 가족 소유의 재규어 차량이 담보로 잡힐 정도까지 되었다. 안재환이 사망한 채 발견된 기아 카니달의 할부금조차 연체된 상황. 그뿐만이 아니었다. 2008년 5월 정선희가 라디오 방송에서 촛불집회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빌미가 되어 그녀는 물론 안재환에게도 나쁜 여파가 닥쳤다.

당시 부부는 화장품 세네린의 홈쇼핑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방송 여파로 세네린의 홈쇼핑 방송이 무기한 보류되는가 하면 라디오 협찬사들이 광고를 중단했고, 대중은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타격이 컸던 것.

결국 안재환의 극단적 선택의 원인은 고리 사채였다. 그는 사업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고리 사채를 사용했고, 불법 채권추심자들은 안재환은 물론 그의 가족을 찾아가 심하게 상환을 독촉했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었다. 일부 누리꾼들이 안재환의 자살에 대해 '최진실이 돈을 빌려줬다가 상환을 압박하는 바람에 그랬다.'라는 등의 헛소문을 퍼뜨린 것.

최진실은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각종 악의적 루머에 시달린 바가 있다. 그녀는 결국 10월 2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동생 최진영, 전남편 조성민 등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하일성은 체육 교사 출신으로 1979년부터 TBC(동양방송, 현 KBS2)에서 야구 해설을 시작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그런데 갑자기 2015년 11월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내용이 알려진다. 지인에게 3000만 원을 빌렸으나 변제를 차일피일 미루다 고소당한 것.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듬해 2월 또 사기 혐의로 피소되었다는 내용이 기사화되었다. 2년 전 한 지인에게 'NC 다이노스 감독과 잘 아는데 그에게 부탁해 지인의 아들을 NC에 입단시켜 주겠다.'라며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이다. 하일성은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입단을 전제한 것은 아니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정도 되면 그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만하다.

결국 그는 2016년 오늘 오전 7시 56분께 송파구 삼전동에 있는, 자신이 차린 스카이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된다. 꽤 인기가 높은 독보적인 야구 해설가로서 전성기를 내달린 그가 왜 사기 행각을 벌여야 했을까? 그는 전성기 때 돈을 많이 벌어 빌딩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빌딩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10억 원의 양도세 등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4억 원 이상의 사채를 쓰는 등 돈 문제로 큰 압박을 받았다.

서태지와아이들은 1992년 '난 알아요'로 데뷔하자마자 가요계에 커다란 돌풍을 일으킨다. 이후 등장한 댄스 그룹은 거의 '서태지와아이들 키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폭발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1993년 2집을 발표하고 타이틀곡 '하여가'로 '난 알아요'의 거센 인기를 이어 갔다. 당시 대표적인 가요 순위 프로그램 중 하나인 KBS2 '가요 톱10'은 골든 컵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한 곡이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 골든 컵이라는 명예로운 상품을 선사한 뒤 명예 퇴진시켜 주었던 것. 드디어 '하여가'가 4주 연속 1위를 지나 5주 차가 되었을 때 아쉽게도 골든 컵 수상에 실패한다. 그것을 저지한 곡이 바로 김수희의 '애모'. 이 곡은 발표된 지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트로트라는 특성상 뒤늦게 역주행하며 서태지와아이들의 행보에 재동을 건 것.

'애모'는 그 여세를 몰아 골든 컵을 수상한다. 그런데 그 이후로 트로트는 국내 가요계의 메인 스트림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미스 트롯'과 '미스터 트롯'이 인기를 끌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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