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이상원 기자] 우리 은하에서 새로운 거대 블랙홀이 발견되었으며, 지구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럽의 우주망원경 가이아(Gaia)를 통해 발견된 이 블랙홀은 은하 내 수십억 개의 별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새로 발견된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33배에 달하는 Gaia-BH3로, 항성 질량 블랙홀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블랙홀은 거대한 별이 연료를 다 소모한 후 붕괴하면서 형성된다. 이번 발견은 항성 질량 블랙홀이 지구 가까이에서 발견된 최초 사례로, 중요한 과학적 전환점을 나타낸다.
Gaia-BH3는 지구에서 약 2,000광년 떨어져 있어, 발견된 블랙홀 중 지구와 두 번째로 가까운 위치에 있다. 가장 가까운 블랙홀은 역시 가이아 망원경으로 발견된 Gaia-BH1으로, 지구에서 1,560광년 떨어져 있으며 태양 질량의 약 9.6배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조지 시브룩 박사는 "Gaia-BH3를 발견한 것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매트릭스'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과 같다"고 비유하며, "우리 은하에 잠들어 있는 항성 질량 블랙홀들의 존재를 드디어 확인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Gaia-BH3는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인 궁수자리 A*(Sagittarius A*)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궁수자리 A*는 태양 질량의 420만 배에 달하며, 작은 블랙홀들이 합쳐져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Gaia-BH3는 항성 붕괴로 형성된 비교적 "작은" 블랙홀이다. 모든 블랙홀은 외부 경계인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을 가지고 있다. 사건 지평선 안에서는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 자체는 빛을 방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숨겨진" 블랙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블랙홀이 동반성과 함께 있는 경우, 두 천체는 질량 중심을 기준으로 공전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동반성의 움직임에 미세한 흔들림(wobble)이 생기는데, 가이아 망원경은 이러한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정밀도를 갖추고 있다. 가이아 연구진은 독수리자리(Aquila)에 위치한 약 1,926광년 떨어진 거대 항성의 경로에서 이상한 흔들림을 포착했다. 이는 이 항성이 거대한 질량의 잠든 블랙홀과 함께 궤도를 공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둘은 가장 가까울 때 태양과 목성 사이 거리만큼, 멀어질 때는 태양과 해왕성 사이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프랑스 파리 천문대의 파스콸레 파누초 박사는 "Gaia-BH3는 연구 경력 동안 한 번 발견할 수 있을 법한 유니콘 같은 존재"라며, "이 정도 크기의 블랙홀은 지금까지 중력파 관측으로 먼 은하에서만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가이아 팀은 Gaia-BH3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33배라는 것을 매우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츠비 마제흐 박사는 "Gaia-BH3는 우리가 항성 질량 블랙홀의 존재를 명확히 입증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블랙홀과 동반성 시스템은 단순한 거리나 질량 이상의 과학적 중요성을 지닌다. Gaia-BH3와 함께 있는 동반성은 태양보다 약 5배 크고 밝기가 15배 더 강하지만, 금속 함량이 매우 적다. 이는 블랙홀을 형성한 별 또한 금속 함량이 낮았음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금속 함량이 적은 별이 블랙홀을 형성할 수 있는 충분한 질량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여겨졌지만, Gaia-BH3는 이 가설에 도전하는 첫 사례가 되었다.
가이아 팀은 다음 데이터 공개를 통해 더 많은 "매트릭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은하 내 잠든 블랙홀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시브룩 박사는 "가이아의 다음 데이터는 더 많은 블랙홀을 드러내는 열쇠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항성 질량 블랙홀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