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인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우주가 수많은 다른 우주들, 즉 ‘멀티버스’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과학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지만, 놀랍게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양자역학과 우주론을 포함한 현대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멀티버스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멀티버스에 대한 생각은 크게 양자 멀티버스와 우주론적 멀티버스로 나뉜다. 양자 멀티버스는 1957년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 3세가 제안한 ‘다중세계 해석’에서 시작됐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가 여러 상태의 중첩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관측하는 순간 특정 상태로 ‘붕괴’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중세계 해석은 관측이 이루어지면 다른 모든 가능성이 별개의 우주에서 실현된다고 가정한다. 즉, 우리가 모르는 다른 현실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론적 멀티버스는 우주 초기 급격한 팽창을 일으킨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비롯된다. 인플레이션은 특정 조건에서 자주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 ‘버블 우주’들이 끊임없이 생성된다. 우리 우주도 이러한 버블 우주 중 하나라는 가설이 제기된다.
물리학자들이 멀티버스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우주의 정밀 조정 문제 때문이다. 현재의 우주는 은하, 별, 행성 그리고 생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놀랍도록 정교하게 구성된 상수들(중력의 세기, 전자기력 등)을 가지고 있다. 이 상수들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생명체는 물론 별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는 이러한 정밀 조정이 우리 우주가 특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만약 수많은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연히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 해도 현재로서는 이를 관측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멀티버스는 여전히 이론적 가설로만 존재할 뿐, 실험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관측이 불가능한 영역의 연구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과 빛의 유한한 속도 때문에 우리는 약 460억 광년 너머에 있는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처럼 자연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대해 상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또한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 관측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 우주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면 일부 과학자들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리학자 폴 헐펀은 “만약 멀티버스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열쇠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과학의 한 형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관측되지 않는 이론은 과학이 아닌 유사 과학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과학의 목표에 대한 논의도 이어진다. 일부 과학자들은 실험과 관측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헐펀은 “인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주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며, “과학은 실험적 결과와 이론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시간차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반상대성이론은 처음에는 실험적 증거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후 관측을 통해 검증되었다.멀티버스에 대한 과학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일부 관측 중심의 과학자들도 멀티버스를 열어둔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연구자의 철학적 선호에 따라 한계는 다르게 설정된다.
헐펀은 멀티버스를 둘러싼 논의가 과학적 방법론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시간과 공간의 본질, 인간이 관측할 수 없는 우주의 한계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자연스럽게 철학적 질문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헐펀은 그의 저서 *‘멀티버스의 매력’*을 통해 독자들이 이론 물리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이해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처럼 확립된 이론조차 우리가 관측하는 우주가 어떻게 이런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풀지 못한다”며,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왜 이 우주가 선택되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큰 미스터리”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