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구에서 75억 광년 떨어진 은하에서 발견된 초대형 블랙홀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자기화된 플라스마 제트를 방출하고 있다. 이 구조는 길이가 무려 우리 은하의 140배에 이르며, 과학자들은 이를 그리스 신화 속 거인 이름을 따 '포르피리온(Porphyrion)'이라 명명했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는 지금까지 관측된 블랙홀 제트 중 가장 거대한 것으로, 초기 우주의 형성에 블랙홀 제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블랙홀은 주변 물질이 블랙홀 경계로 빨려 들어가기 전 강력한 중력과 자기장을 만나며 제트를 형성한다. 블랙홀 주변으로 물질이 나선형 원반 형태로 쌓이는데, 이 원반 내부 물질은 빠르게 회전하며 고온의 플라스마 상태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의 자전축을 따라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며, 일부 물질이 이 자기장에 갇혀 블랙홀 밖으로 뿜어져 나가면서 양쪽 방향으로 긴 제트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제트는 초기에는 블랙홀을 식별하는 시각적 표식으로 주목받았으나, 연구가 진행되면서 제트 자체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여겨졌다. 특히, 제트의 방출로 주변 가스가 응축되는 것을 방해해 새로운 별의 형성을 억제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블랙홀 제트가 그들의 은하 경계를 넘어서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여겨졌다.
이번 연구를 이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천문학자 마르틴 오이(Martijn Oei)에 따르면, 포르피리온은 블랙홀 제트가 초기 우주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2022년 오이와 연구진은 또 다른 블랙홀 제트 시스템인 '알키오네우스(Alcyoneus)'를 발견했는데, 이는 끝에서 끝까지 1600만 광년, 즉 우리 은하 100배 길이에 달했다. 그러나 포르피리온은 크기뿐만 아니라 우주 환경에 미치는 상대적 영향에서도 알키오네우스를 능가한다. 포르피리온은 우주가 지금의 절반 크기에 불과했던 초기 우주에 형성되었고, 그 당시 밀도가 훨씬 높았던 우주 환경에서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포르피리온의 제트는 수조 개의 태양과 맞먹는 에너지를 포함하며, 주변 가스의 온도를 섭씨 100만 도 이상으로 상승시킨다. 이는 초기 우주에서 별뿐만 아니라 은하 자체의 형성을 억제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오이는 포르피리온과 같은 제트 시스템이 지구 생명의 기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지구의 자기장은 고에너지 우주선과 태양의 유해 입자 및 방사선으로부터 생명체를 보호한다. 그런데 이 자기장은 태양의 자기장, 은하계의 자기장, 나아가 우주의 대규모 자기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포르피리온과 같은 구조물이 초기 우주의 자기장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연구진은 포르피리온과 같은 제트가 초기 우주에 미친 영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번 연구는 하늘의 약 15%만을 조사했으며, 이는 발견되지 않은 더 많은 제트 구조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현대 망원경의 민감도 덕분에 과학자들은 이렇게 거대한 제트를 탐지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유럽의 전파 망원경 네트워크인 저주파 배열(LOFAR) 사용해 약 2미터 파장의 전파를 탐지했다. 오이는 이를 "폭력적이고 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곳"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하며, 이후 인도와 하와이에 위치한 관측소를 이용해 포르피리온의 출처인 은하를 조사했다. 오이는 "우리는 원래 우주 거미줄(cosmic web)을 연구하려고 했으나, 포르피리온이라는 두 배로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앞으로도 포르피리온과 같은 거대한 제트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더 많은 비밀을 밝힐 계획이다. 포르피리온과 같은 초대형 제트의 발견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블랙홀의 활동을 넘어서 우주의 형성과 진화, 나아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