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난 6월, 천문학계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우주를 채우고 있는 시공간의 파동, 이른바 저주파 중력파의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번 발견은 미국, 유럽, 인도, 호주, 중국 등 전 세계 연구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각각 유사한 실험을 진행하며 데이터를 공유해 결과의 신뢰성을 높였다. 중력파의 존재가 확고히 증명된 지금, 연구팀들은 그 배경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추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파동이 초거대 블랙홀이 서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추정하지만, 새로운 물리학의 영역을 열 수 있는 기묘한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일대 치아라 민가렐리 연구원은 “이제 막 새로운 연구 분야의 문턱에 섰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지난 6월 28일 미국 주도의 나노중력파(NANOGrav) 협력체와 유사한 연구를 수행하는 펄서 타이밍 배열(PTA) 팀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연구는 초신성 폭발 후 남겨진 고속 회전 중성자별인 펄서의 정밀한 신호 도달 시간을 측정해 중력파를 탐지한다. 중력파는 지구와 펄서 사이의 공간을 약간 축소하거나 확장시켜 신호 도달 시간에 미세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번 결과는 2015년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LIGO)가 별 질량 블랙홀 및 중성자별 충돌로 인한 고주파 중력파를 처음 탐지한 이후 새로운 저주파 영역에서 발견된 중력파로, 천문학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115개의 펄서를 다년간 관찰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주파 중력파의 증거가 도출되었다. 현재 국제 펄서 타이밍 배열(IPTA)이 이 데이터를 통합해 감도를 향상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민가렐리는 “우리는 이 작업을 함께 진행 중이며, 각 PTA 팀에서 한 명씩 대표를 뽑아 데이터를 통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작업은 2년 전부터 진행됐으며, 2023년 말이나 2024년 중으로 더욱 정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의 협력 여부는 변수로 남아 있다. 버지니아 소재 국립전파천문대(NRAO)의 스콧 랜섬은 “중국은 이번 데이터 공개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의 펄서 타이밍 팀은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전파망원경인 FAST(구경 500미터 구면 전파 망원경)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망원경은 2020년 붕괴된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망원경보다 두 배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랜섬은 “FAST는 펄서 연구에 있어 세계 최고의 도구”라며, 중국 팀이 단 3년 만에 미국 나노중력파 팀이 15년간 모은 것과 유사한 결과를 도출한 것을 언급했다. 그러나 FAST가 영구적으로 이 분야를 지배할 가능성은 낮다. 남아프리카의 64개 접시형 망원경으로 구성된 MeerKAT와 같은 대안들이 IPTA 연구에 기여할 예정이며, 미국 네바다에 계획 중인 2,000개 접시형 DSA-2000 프로젝트도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호주와 남아프리카에서 건설 중인 스퀘어 킬로미터 어레이(SKA)는 수천 개의 안테나를 추가 설치해 FAST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천문학자들은 중력파 배경 소음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이들은 더 많은 펄서를 관찰해 하늘에 나타나는 소음의 지도를 제작하려 한다. 초거대 블랙홀 쌍이 원인이라면, 이러한 지도에서 특정 “핫스팟”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반더빌트 대학의 스티븐 테일러는 “이 과정은 단번에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며, “점진적으로 각 근원을 해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핫스팟이 밝혀지면, 천문학자들은 초거대 블랙홀 쌍의 세부 정보를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블랙홀 사이의 거리나 질량을 계산할 수 있고, 다른 망원경을 통해 그 주변 환경을 연구할 수도 있다. 타타 연구소의 아참베두 고파쿠마르는 “PTA로 초거대 블랙홀 쌍을 발견하면 전자기 및 중성미자 관측을 포함해 다양한 후속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만약 핫스팟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저주파 중력파의 원인은 초기 우주의 급격한 팽창에서 발생한 위상 전환이나 가설적인 우주 끈과 같은 이론적 현상일 수 있다. 독일 전자 싱크로트론(DESY)의 안드레아 미트리다테는 “이 현상은 끓는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전환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동시에 유럽우주국(ESA)은 2030년대 중반에 발사될 예정인 레이저 간섭계 우주 안테나(LISA)를 준비 중이다. 이 장비는 백색 왜성과 같은 천체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를 탐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LISA는 초거대 블랙홀 쌍이 최종적으로 합쳐질 때 발생하는 신호도 탐지할 수 있다. 중력파 천문학자들은 현재 이 분야가 맞이한 황금기에 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반더빌트 대학의 테일러는 “이 분야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며, 새로운 발견이 이어질 것”이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