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 고양이의 미소가 따로 움직인다?”…양자학계 뒤흔든 ‘체셔 고양이’ 논쟁
“슈뢰딩거 고양이의 미소가 따로 움직인다?”…양자학계 뒤흔든 ‘체셔 고양이’ 논쟁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물리학자들에게 고양이는 늘 특별한 존재였다. 전자기학의 아버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자유낙하 중인 고양이가 어떻게 방향을 바꾸는지 연구했으며, 많은 물리 교사는 고양이 털과 고무 막대를 이용해 마찰전기를 설명해 왔다.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물리의 기묘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동시에 살아 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고양이를 상상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은 더욱 유명하다. 이처럼 고양이와 인연이 깊은 물리학계가 2013년 뉴 저널 오브 피직스(New Journal of Physics)에 게재된 논문에서 또 한 번 ‘고양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단 세 줄짜리 논문 초록은 다음과 같다. “본 연구에서는 양자 체셔 고양이를 제시한다. 사전에 실험 조건을 설정하고 나중에 결과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고양이는 한 장소에, 고양이의 미소는 또 다른 장소에 있음을 발견했다. 여기서 고양이는 광자이고, 미소는 광자의 원형 편광 상태다.”

이 새롭게 발견된 현상은 알리스 어드벤처 인 원더랜드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처럼, 입자의 특정 속성이 입자 자체와는 다른 경로를 거쳐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1865년에 처음 출간된 이 작품의 저자는 사실 수학자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쓴 것이었다. 이후 여러 실험이 이 기묘한 양자 효과를 입증해 왔으나, 이를 둘러싼 해석에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본 히로시마대학의 물리학자 홀거 호프만은 “입자의 이탈된 성질이 존재한다는 건 다소 과감한 해석으로 보인다”며 “차라리 입자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챕먼대학의 야키르 아하라노프 연구진은 여기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아하라노프는 양자 체셔 효과를 처음 제안한 논문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그와 동료들은 새로이 공개한 이론적 연구(사전 공개 서버 arXiv.org에 게시)에서, 어떤 경우에는 입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도 양자적 특성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것은 일종의 ‘허공에 떠도는 미소’처럼 보이면서도 이전의 주요 반론들을 비켜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하라노프와 동료들이 이 ‘양자 체셔 고양이’를 처음 고안해 낸 것은, 양자역학의 가장 근본적 원리 중 하나인 ‘완전한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고전물리학과 달리, 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양자 실험을 반복해도 결과가 매번 다를 수 있으며, 따라서 단일 실험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산두 포페스쿠는 “아무도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직관에 어긋난다”며 “법칙은 알지만, 그 결과는 늘 우리를 놀라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2013년 논문과 이번 새 연구에 모두 참여했다.

아하라노프는 이런 불확실성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확률적 성격을 지닌 양자역학으로도 근본적인 과정을 탐구할 방법을 모색해 왔다. 올해로 92세인 아하라노프가 중심에 둔 방식은, 똑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여 그 결과를 집단적으로 분석하고, 실험 이전과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서로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포페스쿠는 이를 두고 “양자역학에서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실험 전후 정보를 결합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진은 여러 놀라운 결과를 마주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양자 체셔 고양이’다. 기본 아이디어는 간단해 보인다. 입자를 광학 간섭계(interferometer)에 통과시켜 둘로 갈라진 경로가 나중에 다시 합쳐지게 하는 실험을 고안한다. 그런 뒤 특정한 측정 방식을 사용하면, 입자가 지닌 ‘편광’과 같은 물리적 속성이 입자가 지나는 경로와 달라지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고양이(입자)는 한 경로를 택했는데 고양이의 미소(편광)는 다른 경로에서 검출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론에 자극받아, 2014년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교의 토비아스 덴크마이어가 이끄는 연구팀은 간섭계를 이용한 중성자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중성자라는 ‘입자’ 자체는 간섭계에서 특정 경로를 택했지만, 이 입자의 ‘스핀’(각운동량과 유사한 양자역학적 성질)은 다른 경로를 따른 듯한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는 ‘양자 체셔 고양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알려졌다. 2년 뒤 미국 포틀랜드대학의 막시밀리안 슐로스하우어 연구팀도 광자를 이용해 같은 실험을 성공적으로 재현했고, 광자가 실제로 간섭계에서 이동하는 경로와 편광 상태가 감지된 위치가 어긋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여전히 이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한다. 호프만은 “이런 분리는 사실상 말이 되지 않는다.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곧 그 입자의 성질 중 하나일 뿐”이라며 “위치와 편광 사이에 기묘한 상관관계가 생긴 것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동료들과 함께 이미 잘 알려진 양자역학적 효과로 이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연방대학교의 파블로 살단야 역시 물질파와 입자라는 이중적 특성(파동-입자 이중성)을 고려하면, 굳이 ‘분리됐다’고 볼 필요 없이 간섭 효과로 모든 실험이 설명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살단야는 “그 자체로는 모순이 없지만, 복잡한 수식을 펼쳐놓으니 단순한 해석이 가려지고 만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는 입자의 성질과 위치를 어떻게 측정하느냐가 자리 잡는다. 입자를 측정하는 행위 자체가 양자 상태를 바꿀 수 있기에, 광자나 중성자를 간섭계 안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검출할 수 없다. 그래서 1988년 아하라노프가 고안한 ‘약한 측정(weak measurement)’이라는 방법이 사용된다. 이는 입자에 미치는 교란을 극도로 줄여 양자 상태를 ‘파괴’하지 않고 측정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개별 측정은 매우 부정확하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동일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 통계적으로 결과를 보정해야 한다.

양자 체셔 고양이 실험에서, 간섭계 중 한 경로에서는 입자의 위치를 ‘약한 측정’으로 확인하고, 다른 경로에선 편광이나 스핀을 체크한다. 이후 두 경로가 합쳐져 최종 검출기에 도달할 때, 그 정보를 모아 어떤 입자가 어느 경로를 지나갔는지 역추적하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특정 경로에선 입자가 검출되고 다른 경로에선 입자의 편광 또는 스핀이 검출된다면, 연구진은 ‘입자와 그 성질이 분리됐다’고 해석한다. 반면 살단야 측은 실험 최종 단계에서 확인되는 광자나 중성자가 과거 어느 경로를 지났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반론한다. 파동함수가 간섭계 안에서 겹쳐지기 때문에, 어느 쪽 경로를 택했는지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이 기묘한 행동은 파동-입자 이중성에서 비롯된다”는 게 살단야의 주장이다. 또 호프만 측은, 양자물리에서 측정 순서가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입자의 속도를 먼저 측정하고 위치를 확인했을 때와,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속도를 확인했을 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입자와 편광이 다른 경로로 나뉘어 이동한다는 결론 자체는 실험 조건에 한정된 것이며, 동시에 적용되는 영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포페스쿠는 이런 비판들에 대해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반박한다. 살단야와 호프만의 분석이 논리적으로 틀렸다고는 보지 않지만, 결국 어떤 관점이 옳은지 가리려면 각 해석에서 ‘새로운 예측’을 제시해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분들은 모순이 보이면 수식을 거기서 멈추는 구(舊)방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하라노프와 포페스쿠는 최근 동료인 영국 브리스톨대학의 다니엘 콜린스와 함께 ‘입자의 스핀이 입자 본체와 완전히 분리돼 이동하는’ 상황을 제안하는 논문 초안을 내놨다. 이는 약한 측정을 쓰지 않고도 실현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가령 길쭉한 두 구역으로 나뉜 실린더를 가정하고, 한쪽 끝은 입자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만 ‘터널링(quantum tunneling)’을 통해 넘어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든다. 이 경우 대부분 입자는 왼쪽 구역에 머무르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바깥벽 쪽에서 입자의 스핀 이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콜린스는 “이거야말로 놀라운 이야기”라며 “일반적으로 입자의 스핀은 입자 본체에 묶여 있다고 상상하지만, 여기서는 스핀만 벽을 관통해 옮겨 간다”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는 에너지·운동량 보존 등 기본 물리법칙만 고려하는 것으로, 양자 체셔 고양이에 대한 회의론자들의 주요 지적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주장한다. 호프만도 이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고 평가한다. “편광(스핀)과 입자의 움직임이 상호작용하며 강력한 양자 효과를 만들어 내는 예”라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입자가 아예 없어도 스핀이 움직인다’는 해석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유지한다. 그에 따르면 “측정을 독립된 실재로 가정하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며, 양자역학에서 입자가 어느 영역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저 상식적 추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살단야 역시 “파동은 ‘아주 작은 확률’이 아니라, 공간에 퍼질 수 있는 존재”라며, 입자가 오른쪽 구역으로 갈 확률이 미미하다는 설정이 결국 파동 간섭 효과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어떻게 보든 동일한 예측이 가능하고, 굳이 격렬한 결론에 이를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이처럼 해석이 분분함에도, 포페스쿠는 “어떤 해석을 택하더라도, 양자 체셔 고양이는 새로운 기술적 응용을 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물리적 입자(물질이든 빛이든)를 직접 이동시키지 않고도 정보나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포페스쿠 입장에선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역시 물리학의 근본적인 물음에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양자역학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탐구에서 시작됐다”며 “그 과정에서 보존법칙의 작동 방식에 관한 근본적 통찰을 얻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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