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파라입자’ 존재 제시…양자 컴퓨터 활용 가능성 열리나
새로운 ‘파라입자’ 존재 제시…양자 컴퓨터 활용 가능성 열리나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이론물리학자들이 보존이나 페르미온으로 분류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아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8일자 네이처(Nature)지에 이른바 ‘파라입자(paraparticle)’를 상세히 수학 모델로 제시했는데, 이는 완전히 처음 제안된 개념은 아니지만 그 특성을 구체적으로 규명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이번 연구가 양자 컴퓨터로 실험적인 창조가 가능하다는 실마리를 제시함에 따라, 자연계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초보적인 파라입자가 잠재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해 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페르미온도 보존도 아닌 또 다른 입자인 ‘애니온(anyon)’을 사실상 1차원 우주에서 실험적으로 구현해 보였다. 애니온이 실제 실험에서 만들어진 건 이전에도 있었지만, 주로 2차원에서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가 주목된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물리학의 분류 체계에서 벗어난 파라입자와 애니온 모두, 향후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오류 발생을 줄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약 한 세기 전,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오스트리아 출신 이론가 볼프강 파울리는 두 개의 전자는 같은 상태를 차지할 수 없으며 만약 서로 근접해 동일한 상태가 되려 하면 척력이 발생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파울리 배타 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라 불리며,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에 모두 한꺼번에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지 않고 각각 다른 에너지 궤도를 차지하는 근거가 되었다. 파울리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이 배타 원리가 전자뿐 아니라, 양성자나 중성자처럼 더 큰 범주의 입자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이들은 이런 입자 군을 ‘페르미온’이라 불렀다. 반대로, 레이저 빔의 광자처럼 같은 상태를 선호해 공유하려 드는 입자 군은 ‘보존’으로 분류되었다. 파울리와 그의 동료들은 입자가 페르미온인지 보존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입자의 고유 각운동량인 ‘스핀’과 관련된다는 점 역시 해명했다.

수학적으로 페르미온의 핵심 특징은 두 입자의 위치를 서로 바꿨을 때, 그 둘이 공유하는 ‘파동함수(wavefunction)’에 음의 부호가 붙는다는 것이다. 반면 보존인 경우엔 파동함수가 바뀌지 않는다. 일찍이 양자 이론가들은, 두 입자를 교환했을 때 파동함수가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변화하는 입자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1차원이나 2차원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애니온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발견되었다. 이번에 독일 가르칭 소재 막스 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의 즈위위안 왕, 미국 텍사스 휴스턴 라이스대의 케이든 해저드 연구팀이 새롭게 완성한 파라입자 모델은 어떤 차원에서도 존재할 수 있으면서, 페르미온이나 보존과는 다른 고유 특성을 가진다. 특히 이 파라입자는 독자적인 형태의 파울리 배타 원리를 따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국 요크대학교에서 수리물리학을 연구하는 카샤 레이즈너는 “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는 완전히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매력적인 결과”라고 평했다. 왕은 이 파라입자 교환 규칙을 2021년 박사과정 중 우연히 발견했다고 전하며, “제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왕은 또한 양자 컴퓨터에서 이 파라입자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라입자는 페르미온과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데, 두 입자를 교환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면 최초 상태로 복원된다는 점이다. 반면 애니온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도 이전의 양자 상태가 달라져 있으며, 그래서 파라입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 소속 조이스 콴과 마르쿠스 그라이너 연구진이 루비듐-87 동위원소 원자를 진공 상태에서 빛의 파동으로 만든 장에 띄워놓고 실험했다. 이때 원자는 빛의 파동 골(trough)에 머무는 경향이 있고, 양옆에 1마이크로미터도 되지 않는 간격으로 인접한 골 사이를 가끔씩만 오간다. 원래 조건이라면 루비듐-87 원자는 보존처럼 행동해, 두 입자가 하나의 골을 쉽게 공유한다. 그러나 연구팀이 빛의 세기를 주기적으로 조절하자, 두 원자가 서로 자리를 바꿀 때마다 파동함수가 특정 각도로 뒤틀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 현상이 바로 애니온의 대표적 특징이다. 콴은 “파동함수를 직접 관측하기 위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고, 원자들이 이동한 후 특정 시점에 움직임을 정지시킨 뒤 원자의 위치를 이미지로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두 애니온의 파동함수가 ‘어떻게 교환되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 특징이 정보 저장이나 처리에 안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메모리’ 성질은 이미 구글 소속 물리학자 등 여러 연구팀이 2차원에서 가상 애니온을 구현해 양자 정보를 다루는 실험에서도 이용된 바 있다. 파라입자는 애니온만큼 안정적인 정보 저장 방식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응용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왕은 말했다. 흥미롭게도 파라입자는 3차원에서도 존재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아직 자연계에서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초보적인 파라입자들 역시 실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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