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우주, 정말 어디에서나 똑같을까?
끝없이 펼쳐진 우주, 정말 어디에서나 똑같을까?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인류가 망원경을 통해 하늘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래, 우리는 오랜 시간 우주의 신비를 조금씩 밝혀 왔다. 그 과정에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태양계를 돌고 있는 지구는 단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으며, 태양계 자체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별들이 속한 은하 중 하나에 불과했고, 이 은하조차 전체 우주에선 하나의 예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곳에도 다양한 태양계가 존재하고, 그중에는 자신들만의 우주적 중요성을 지나치게 부풀려 생각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 존재가 우주의 기준이 아니라는 개념은 ‘우주론적 원리(cosmological principle)’라는 형태로 현대 우주론의 기초가 되었다. 이 원리는 우주가 전체적으로 균질하고, 모든 방향으로 그 물질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은하들은 서로 중력으로 얽혀 광대한 필라멘트나 막 같은 대규모 구조를 이루지만, 더욱 큰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그마저도 부드럽게 퍼져 있는 형태라는 설명이다. 영국 센트럴랭커셔대학교의 알렉시아 로페즈는 “매우 멀리서 우주를 내려다본다면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모습일 것”이라고 말한다. 로페즈는 우주를 해변의 모래사장에 비유한다. 현미경으로 모래 한 줌을 들여다보면, 각 알갱이는 색과 모양, 크기가 제각각인 독특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모래언덕이 펼쳐진 해안을 멀리서 바라보면, 모든 모래알은 하나의 고른 베이지색 지형으로만 보이듯이 우주 전체도 대체로 균질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구를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이 우주 안에서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천문학자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가정이 된다. 지구 근처 은하부터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까지 우주의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일부 국소적인 관측만으로도 전체 우주를 예측하거나 일반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순화 원리는 우주가 어떻게 진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를 추정하는 수많은 수학적 모델에 적용된다. 예컨대 암흑물질이 은하단을 어떻게 중력으로 묶는지 연구하거나, 우주 곳곳에서 생명체가 얼마나 흔하게 나타날지를 추산하는 문제 역시 이 가정에 의존한다. 로페즈는 “모든 것은 ‘우주론적 원리’가 사실이라는 전제 위에서 돌아간다”면서도 “이 원리가 사실 꽤 모호한 가정이어서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특히 우주가 정말 어디에서나 균질한지 확인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실제 관측에서 균질성을 위협하는 증거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주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불규칙한 면모를 지녔을 수 있다는 관측 결과들이 잇달아 제시되고 있다. 만약 이 결과들이 옳다면, 인류는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우주를 바라보는 시야가 어느 곳에서든 동일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는 셈이다. 브라질 연방 에스피리토산투대학교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천문대에서 연구 중인 발레리오 마라는 “더 큰 스케일에서 보면, 다른 관측자들은 다소 다른 우주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평균적인 시선’ 자체가 무의미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천문학계가 아직 우주론적 원리를 완전히 폐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혹은 얼마나 강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 가지 방법은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우주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가령 폭넓은 관점에서 12억 광년보다 더 광대한 구조가 발견되면, ‘우주는 대규모로도 균질하다’는 가정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예시들이 관측됐다. 로페즈는 ‘거대 호(Giant Arc)’라는 막대한 규모의 구조를 발견했는데, 이 은하들의 호 모양 사슬은 무려 33억 광년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빅 링(Big Ring)’이라고 불리는 역시나 막대한 고리 형태 은하 집단도 찾아냈다. 빅 링은 지름만 약 13억 광년에 달하고, 둘레를 따지면 40억 광년에 육박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거대한 구조가 서로 근접해 있으며, 어쩌면 하나로 연결된 더 큰 초거대계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우주론적 원리에 제기되는 의문은 이 거대 구조들만 때문이 아니다. ‘빅뱅’ 직후 우주를 채웠던 빛의 잔재인 우주배경복사(CMB)를 보면, 예상과 달리 상당히 큰 스케일에서 잡음 이상의 편차가 포착된다. 미시간대학교의 우주론자 드라간 후테러는 “이는 무작위 변동으로만 설명하기 어렵고, 지금까지도 명쾌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렇게 관측되는 불규칙성에 대해, ‘우주적 분산(cosmic variance)’이라는 개념을 들어 반박하기도 한다. 즉, 우리는 우주의 일부만을 관측할 수밖에 없고, 그 한정된 데이터 때문에 생기는 통계적 불확실성이 결국 이런 이상 현상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우주의 영역과 비교하면, 지금 보이는 ‘울퉁불퉁함’이 나중에는 더 균등하게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우주 구조일수록 관측 데이터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은하의 형태를 분석하겠다 하면 다행히도 우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은하가 있어 통계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라고 후테러는 말한다. “반면 우주의 거대한 구역 자체를 연구하려고 하면, 관측 범위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몇 사례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라는 한때 여러 우주론적 모순을 우주적 분산 개념만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본인과 동료들의 계산을 통해서는 그 불일치를 전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주 관측 결과는 여전히 우주론적 원리를 지지한다. 우주의 극단적인 사례들을 두루 살펴봐도 결정적인 반례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당장 이 원리를 대체할 다른 이론적 틀도 갖춰지지 않은 만큼, 과학자들은 속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원리가 깨졌다고 말할 만한 결정적 증거는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상 신호가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라고 후테러는 강조한다. 우주가 철저히 균질하다는 믿음과 달리, 일부 우주 영역에서만 드러나는 미세한 불규칙성은 앞으로도 계속 과학자들을 고민하게 만들 전망이다. 결국 이 문제의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가 우주를 단 한 번만 ‘실험’해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후테러의 말처럼 “실험실에서 원하는 대로 반복 실험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이상, 우리는 단 하나뿐인 우주로부터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주가 정말 어디에서나 똑같이 펼쳐져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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