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약 20년 전, 지구에서 반은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작은 중성자별의 폭발이 지구의 자기장을 일시적으로 짓누르고, 일부 인공위성을 마비시켰으며, 우리 행성의 상층 대기를 부분적으로 전리시키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겨우 수십 킬로미터 남짓한 크기의 ‘죽은 별’이 만들어낸 충격파가 실제로 지구의 방어막을 흔든 것이다. 이토록 무시무시한 힘이, 그저 손바닥만 한 크기에 불과한 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우주의 신비로움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천체는 궁수자리 방향으로 약 5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SGR 1806-20’이라는 마그네타였다. 마그네타는 이미 극단적으로 강력한 중성자별 가운데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특이한 존재다. 이들은 초신성 폭발로 태어나는데, 거대한 별이 중심핵을 붕괴시키면서 빛의 상당한 속도로 외곽 물질을 날려 버리는 그 순간, 핵이 압축돼 전자와 양성자가 합쳐지고(이때 소립자 중 하나인 안티중성미자도 생성된다), 결국 중성자만 빽빽이 모인 밀도 극한의 별이 탄생한다.
이러한 중성자별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물리적 특성을 지닌다. 태양보다 더 무거운 질량이 고작 20여 킬로미터 안에 압축돼 있으니, 그 밀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주사위의 4분의 1 크기에 해당하는 1세제곱센티미터의 중성자별 물질을 떠올리면, 무려 1억 톤에 달한다. 미국 전역의 자동차를 모두 한데 뭉쳐 각설탕 크기로 압축한 것과 비슷한 무게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중성자별 표면의 중력 또한 가공할 만하다. 지구의 수십억에서 수천억 배에 달하는 중력이 인체에 작용한다면, 설령 그 위에 선다고 가정해도 순식간에 납작하게 압축돼 미세 입자 수준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보통’ 중성자별도 지구 자기장보다 수십억 배나 강력한 자기장을 갖는데, 일부는 이를 훨씬 뛰어넘어 지구 자기장의 수천조 배(10^15가량)에 해당하는 자기장을 지닌다. 이런 괴물 같은 중성자별이 바로 마그네타이며, 은하계에서 가장 위험한 천체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소에도 마그네타는 그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이지만, 가끔 ‘플레어(flaring)’라는 이름의 폭발적 활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플레어’라는 단어로는 실제 일어나는 엄청난 상황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너무 온화한 표현이다.
마그네타의 강력한 자기장은 별의 ‘표면 껍질(크러스트)’ 내부 깊숙이 박혀 있다. 어떤 마그네타는 이 단단한 껍질이 불안정해지며 미세하게 미끄러질 때가 있는데, 이를 ‘별지진(starquake)’이라 부른다. 지진과 유사한 원리이지만, 여기서는 밀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고 중력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겨우 1밀리미터 정도 균열이 가고 미끄러져도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해, 표면 물질 수백조 톤가 일시에 기화될 온도에 도달한다. 이 충격은 자기장에도 타격을 주어 자기장 선을 재편성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축적돼 있던 에너지를 또 한 번 폭발적으로 방출한다. 결국 엄청난 규모의 대재앙이 벌어지는 셈이다. 네트워크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성자별이나 마그네타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따라서 대개는 우주적 거리 때문에 이들의 플레어가 우리 지구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하지만 간혹 ‘슈퍼플레어(superflare)’라고 불릴 만한 초강력 폭발이 일어날 때면, 그 희소성만큼이나 기록적인 충격이 관측된다.
SGR 1806-20은 약 5만 년 전 바로 그러한 슈퍼플레어를 경험했다. 당시 폭발은 눈 깜짝할 사이인 0.1초 만에 일어났다. 껍질이 미끄러지고 껍질 자체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자기장과 결합해 우주 공간을 휩쓸었다. 그 에너지는 같은 시간 동안 태양이 내놓는 에너지의 10조 배 정도에 달했다고 추정된다. 감마선이 중심을 이루었지만, 엑스레이를 포함해 다양한 파장의 빛이 함께 방출됐다. 이를 지구적 규모로 단순비교하자면, 이 별지진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지진보다 32해(10^21) 배나 강력한, 무려 진도 32 규모에 달하는 셈이다. 폭발이 감지되기 불과 한 달 전쯤 NASA가 쏘아 올린 ‘스위프트(Swift)’ 위성은 수십억 광년 떨어진 거대 우주의 폭발을 관측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예상치 못한 이 마그네타의 에너지 폭발로 센서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위성이 폭발이 일어난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는데도, 엄청난 감마선이 우주선 벽을 뚫고 들어와 검출기를 마구 때려버린 것이다.
첫 에너지는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집중됐지만, 이후 5분 넘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긴 꼬리’가 스위프트의 예민한 측정 장치에 포착됐다. 당시 초강력 슈퍼플레어의 밝기는 7.56초 간격으로 파동처럼 오르내렸는데, 이는 SGR 1806-20이 7.56초 주기로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스스로 돌면서 별지진 흔적이 밝게 빛나는 영역이 주기적으로 지구를 향해 드러났고, 그 결과 마치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처럼 깜빡이는 것처럼 관측됐다.
이 강력한 에너지는 지구에도 물리적 흔적을 남겼다. 우리 행성에서 600km 상공까지 뻗어 있는 전리층(이오노스피어)을 일시적으로 추가 전리시켰고, 지구의 자기장에도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끼쳤다. 전반적으로 그 영향은 크지 않았지만, 이 중성자별이 무려 은하 한복판에서 지구까지 닿을 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뿜어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만약 그 거리가 더 가까웠다면, 강력한 태양 플레어가 위성 장비를 파괴하거나 지상 통신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훨씬 큰 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5만 광년이라는 거리는 매우 멀다. 더 가까이에 있는 다른 마그네타들도 지금까지는 이렇듯 강력한 슈퍼플레어를 관측한 바 없다. 파괴력 면에서 SGR 1806-20은 확실히 최상위 클래스를 입증했다.
이 때문에 당장 마그네타가 지구를 위협할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2004년 말 슈퍼플레어 때 일각에서는 이 폭발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인도양 지진(수마트라-안다만 지진)과 쓰나미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거대한 지진은 마그네타 폭발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기 하루 전쯤 이미 발생했다. 빛의 속도로 여행하던 폭발의 충격파는 당시 지구에서 여전히 500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고, 두 사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결국 SGR 1806-20의 슈퍼플레어는, 우주가 얼마나 쉽고도 무심하게 압도적 에너지를 휘두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별은 폭발하고, 마그네타는 격변을 일으키며, 각종 우주적 사건이 쉴 새 없이 터진다. 다행히 이 같은 천문학적 재앙이 거대한 우주적 거리로 인해 희미해진 덕분에, 인류는 오랜 시간 자신의 존재를 지켜 왔다.
지구가 탄생한 이후 46억 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새해를 맞아 우주의 광활함에 감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잔을 들어 망망대해 같은 하늘을 향해 건배를 하고, 과학이 이러한 현상을 관측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노고에 경의를 표해보자. 마그네타가 언제 또다시 폭발을 일으킬지 알 수 없지만, 우주가 보여주는 장엄한 불확실성은 오히려 우리에게 겸손함과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