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낮 동안에는 별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여겨진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조용히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조금은 짓궂게도 하늘 한가운데 빛나는 태양을 가리켜라. 농담을 제쳐두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낮에 다른 별들을 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태양이다. 여기에 지구 대기의 작용도 중요한 몫을 한다. 지구 대기를 이루는 분자들은 마치 핀볼 기계의 장애물처럼 태양에서 나오는 빛, 즉 광자를 사방으로 흩뿌린다. 우리는 이 분자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하늘 어디를 봐도 태양빛이 퍼져 들어온다. 특히 지구 대기는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을 더 많이 산란시키기 때문에 하늘은 파랗게 보인다.
게다가 이 빛은 상당히 밝다. 대부분의 별빛은 희미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방으로 퍼진 태양광에 묻혀버린다. 마치 시끄러운 록 콘서트장 한복판에서 들리는 작은 속삭임을 알아듣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볼 때, 낮에 별을 관측할 수 있다면 천문학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일부 별들은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빠르게 상태가 바뀌곤 하는데, 예를 들어 2019년과 2020년에 붉은 초거성 ‘베텔기우스’가 엄청난 양의 먼지를 뿜어내면서 밝기가 절반 이상 급감했을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 현상의 물리적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정 기간 동안 베텔기우스가 태양 근처에 위치해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관측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놓친 것이다. 그 밖에도 시간적 긴급성이 높은 천문 현상은 많기에, 낮의 밝은 하늘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그간 전문가용 장비로 진행된 시도 가운데는, 1981년에 칠레의 적외선 망원경(지름 1m)에 매우 민감한 광도계(고급 조도계 같은 장치)를 연결해 낮에도 별을 관측한 사례가 있다. 2007년에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디지털 센서를 소형 굴절 망원경에 장착해 3등급 수준의 별까지 상당히 정밀하게 광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대체로 낮 관측에서는 1% 정도 오차 범위의 광도 측정이 가능하지만, 밝은 별일수록 성능이 더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 가장 최근에는 호주 매쿼리대학교의 연구진이 ‘헌츠맨 망원경 패스파인더(Huntsman Telescope Pathfinder)’라는 시험 장비로 같은 방식의 관측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 패스파인더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카메라 렌즈 하나와 비교적 저렴하지만 정교한 디지털 카메라를 결합한 장치다. 본래는 밤하늘을 넓게 촬영하는 ‘헌츠맨 망원경’의 완성형으로 가기 전 시험 단계로 고안됐는데, 연구진은 낮에도 성능을 점검해보고자 했다.
연구진은 태양이 지평선에서 최대 약 30도까지 떠 있는 상황에서, 밝기와 색이 제각각인 35개의 별을 패스파인더로 관측해봤다. 그 결과, 1~10% 정도의 광도 측정 정확도를 달성했는데, 낮 관측이란 점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과다. 하늘이 워낙 밝아 촬영 시간이 길어지면 센서가 쉽게 포화(과다 노출) 상태에 이르므로 노출 시간을 매우 짧게 잡아야 한다. 따라서 목표 별빛을 충분히 포착하기 위해 수천 장에서 수만 장에 달하는 이미지를 누적해 분석해야 한다. 그래도 연구진은 최대 4.6등급 정도의 희미한 별까지 잡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어두운 하늘의 한계 밝기보다 그리 많이 밝지 않은 수준이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관측 결과로, 연구진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낮에 추적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ISS는 인공위성 중에서도 가장 밝은 축에 속하지만, 지상 관측자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와 수평선에 가까이 있을 때 거리가 상당히 달라 밝기도 급격히 변화한다. 그런데도 패스파인더는 ISS의 태양전지판이나 개별 모듈처럼 비교적 큰 구조물까지 구분해냈다.
이처럼 비교적 단순한 장비로도 밝은 위성이나 별을 낮에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더 정교한 장비가 활용된다면, 점점 늘어나는 지구 궤도의 인공위성들을 추적하는 데 한층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우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관측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낮에 천체를 보는 일은 전문 장비가 없어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가장 간단한 예가 바로 달이다. 달은 태양을 제외하면 하늘에서 가장 밝은 천체이므로, 초승달 무렵에는 해가 지기 전 동쪽 하늘에서 달을 볼 수 있고, 하현달 즈음에는 아침에 서쪽 지평선 부근에서 관측이 가능하다. 가끔씩은 혜성도 낮에 관측 가능한 경우가 있다. 2007년의 ‘C/2006 P1 맥노트’ 혜성이 바로 그런 사례였는데, 대낮에도 맨눈으로 보일 만큼 밝아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연출했다. 이런 일이 흔치 않지만, 한 번 보게 되면 누구나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낮에 별이 보이는 또 다른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바로 초신성 폭발이다. 초신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밝은 폭발 현상인데, 만약 우리 은하 안에서 이런 폭발이 일어나면 대낮에도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밝아질 수 있다. 베텔기우스 역시 언젠가 폭발할 때는 보름달만큼 밝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이 부실 정도의 광도로만 인식될 것이다. 다만 실제로는 몇십만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추정돼, 차라리 우리 은하의 다른 별이 먼저 폭발해주길 바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천문학자들은 낮에 육안만으로 관측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 태양이 떠 있는 시간대에 별들을 관찰할 수 있다면, 관측 시간이 크게 늘어나 여러 가지 이점이 생긴다. 단점이 있다면 아마도 밤낮이 뒤바뀐 생활 패턴을 더욱 복잡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