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우주를 관통하는 은밀한 ‘유령 입자’의 비밀
중성미자, 우주를 관통하는 은밀한 ‘유령 입자’의 비밀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약 500조 개에 달하는 중성미자가 우리 몸을 통과하고 있다. 워낙 작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이 작은 입자들은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면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과학 저술가 제임스 리오던은 중성미자에 대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정리해봤는데, 후자의 목록이 더 길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중성미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적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현재 분명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만큼이나 미스터리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풀어낼 흥미로운 과학적 과제가 무궁무진하다는 설명이다.

리오던은 중성미자를 공동 발견한 과학자 중 한 명인 클라이드 코완 주니어의 손자다. 하지만 그가 아홉 살 때 코완이 세상을 떠나 가족에게도 전설처럼만 전해졌다. 그래서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또렷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며 비로소 할아버지가 했던 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그 뒤 과학 저술가가 되어 중성미자 관련 흥미로운 결과들을 접할 때마다 그 관심이 점점 깊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MIT 프레스 측에 책 출간을 제안했는데, 담당자들은 전문 물리학자가 함께 참여해주길 원했다. 이에 리오던은 기발한 이론적 아이디어로 유명한 물리학자 앨런 초도스를 떠올렸다. 그는 중성미자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소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했던 이론가다.

그는 중성미자가 자기 자신의 반입자인지 여부가 가장 극적인 문제라고 꼽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주의 기원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중성미자가 실제로 자기 자신과 반물질 관계라면, 우주가 왜 물질이 더 많은지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완벽히 균형을 이뤘을 것이다. 하지만 둘이 서로 소멸했더라면, 지금의 우주엔 물질이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결국 그 균형이 어디선가 깨졌는데, 중성미자가 그 원인을 밝혀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30년, 볼프강 파울리가 베타 붕괴에서 누락된 에너지와 운동량을 설명하기 위해 중성미자를 가정했다. 하지만 중성미자라는 새 입자를 단지 ‘숫자 맞추기용’으로 도입했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래서 파울리 자신도 이 아이디어가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누락된 양을 억지로 새로운 입자로 묶어 해결한다는 점이 그저 임시변통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가 전혀 검출될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세 가지 유형의 중성미자를 확인했다. 그럼 혹시 더 많은 종류가 존재할 가능성도 있는 걸까?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는 한 실험에서 예상보다 많은 수의 중성미자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를 해석하는 하나의 가설이 ‘스테릴(sterile) 중성미자’다. 이 중성미자는 다른 중성미자나 암흑물질 등과만 상호작용하며, 일반 물질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 입자다. 아직은 가능성 수준이지만, 중성미자 유형이 더 다양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로스앨러모스에서 발견된 이상 현상은 실험 오류일 것으로 예상됐고,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 등에서도 추가 확인이 진행됐다. 흥미롭게도 후속 실험에서도 이 스테릴 중성미자의 시사점이 재현됐는데, 이는 모두가 단순 오류라고 치부했던 결과가 다시 한번 떠오른 셈이다. 물론 아직 반론도 많아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곧 더 확실히 판가름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하나의 큰 난제는 중성미자의 질량이다. 처음엔 질량이 0일 것으로 예측됐지만, 지금은 0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질량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

독일 카트린(KATRIN) 실험 같은 경우, 중성미자의 질량을 측정하려 하지만 실제 결과 표시는 ‘양의 값’이나 ‘음의 질량제곱’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 만약 음의 질량제곱이라면, 소위 ‘타키온’ 중성미자로서 광속보다 빠르게 이동하거나 시간 역행을 시사할 수 있다는 재미있는 가설이 등장한다. 물론 KATRIN 연구자들 스스로는 이를 진지한 가능성으로 여기지 않고 오차를 줄이기 위한 범주로 포함시킨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앨런 초도스 같은 이론가들은 통계에서 배제하지 않고 지켜보는 입장이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빛보다 빠르면 물리학적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 셸든 글래쇼는 만약 중성미자가 광속을 초과하면 엄청난 방사선이 발생해 바로 속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빠르다 해도 금세 다시 광속 이하로 떨어진다는 주장인데, 이 말에 많은 과학자가 동의한다. 이론가들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발휘해 볼 뿐, 실제로 이를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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