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폭풍의 비밀… 감마선 폭발이 빚어낸 새로운 번개 생성 단서?
번개 폭풍의 비밀… 감마선 폭발이 빚어낸 새로운 번개 생성 단서?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번개가 같은 곳을 두 번 치지 않고, 지켜보는 냄비는 좀처럼 끓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특히 ‘냄비’가 열대 지역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번개 폭풍이자, 그 광경을 성층권 위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두 건의 연구에 따르면, 일부 폭풍우는 마치 거품이 끓어오르듯 감마선을 내뿜는 ‘끓는’ 상태를 보이며, 그중 일부는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찰나의 깜빡임 같은 패턴으로 번개 발생과 맞물려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뉴햄프셔대학교의 물리학자 조지프 드와이어는 해당 연구 논문의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번개가 구름 속에서 어떻게 시작되는지는 아직 큰 수수께끼”라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기구나 항공기를 이용한 관측으로도 폭풍 안에서 번개 불꽃을 만들 만큼 강력한 전기장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 세계 뇌우는 매일 800만 회 이상의 번개를 만들어낸다. 분명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번 연구가 바로 그 무언가를 밝혀낼 단서를 줄지도 모른다.”

사실 과학자들은 뇌우가 감마선을 방출할 수 있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감마선은 보통 초신성 폭발이나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는 등 천체물리학적 현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에너지 빛이다. 지구 대기에서 발생하는 뇌우의 경우, 폭풍우 안에서 물방울과 얼음 결정이 서로 스치며 전하를 띠게 되고, 양전하가 구름 꼭대기로, 음전하가 구름 아래로 이동하면서 약 1억 볼트에 달하는 거대한 전기장이 형성된다. 이때 전자들은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되어 공기 분자와 부딪히고, 이어지는 충돌의 연쇄반응이 감마선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포착한 뇌우 속 감마선 방출은 크게 두 가지다. 수백 초 동안 비교적 길게 이어지는 ‘글로우(glow)’와, 마이크로초 단위의 매우 짧은 폭발인 ‘지상 감마선 섬광(TGF)’이 그것이다. 특히 TGF는 지구 관측 위성에도 포착될 정도로 밝게 빛난다.

하지만 항공기와 지상 관측 장비로 얻은 부분적인 자료로 짜맞춘 현재의 이해는 완벽하지 않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 국립태풍연구소(National Severe Storms Laboratory)의 대기과학자 바나 츠미엘레프스키는 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구름 속에서 전하가 어떻게 분리되는지, 번개가 어떻게 시작되고 통로를 형성하는지 등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실험실에서 완벽히 재현하거나 이론 모델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폭풍 안에 다양한 변수가 개입되고, 단일 폭풍 내에서도 변동이 심하며, 검증에 활용할 관측 데이터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노르웨이 베르겐대학교의 대기물리학자인 니콜라이 외스트가르드와 마르티노 마리살디가 이끄는 연구팀은 2023년에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 상공에서 대형 뇌우의 감마선 방출을 집중 관찰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개조한 U-2 정찰기를 이용해 10차례 출격한 이들 연구는 이른바 ‘ALOFT(Airborne Lightning Observatory for Fly’s Eye Geostationary Lightning Mapper Simulator and Terrestrial Gamma-Ray Flashe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이뤄진 뇌우 감마선 방출 관측 가운데 가장 집중적이고 포괄적인 시도다. 이 연구 공동저자이자 듀크대학교 소속 전기공학자 스티브 커머는 “ALOFT의 목표는 ‘감마선 섬광이나 글로우 현상이 흔한지 드문지’를 결정적으로 규명하는 것이었다”며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감마선 생성 과정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비행 관측에서 글로우와 TGF는 예상대로 관측됐지만, 그 양이 훨씬 많았다. 특히 다수의 TGF는 너무 어두워서 위성으로는 확인되지 않을 정도였다. 또한 글로우 역시 구름 특정 지점에서 꾸준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 시간 동안 최대 약 100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수백 건에 달하는 관측 사례 중에는 새로운 유형으로 보이는 순간적인 감마선 방출인 ‘플리커링 감마선 섬광(FGF)’도 발견됐다. 이는 밀리초 단위로 이어지는 깜빡임 형태였으며, 글로우 현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흥미롭게도, 외스트가르드는 “모든 순간적 감마선 이벤트 뒤에는 강렬한 번개가 따랐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높은 에너지를 가진 이벤트가 활발히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뇌우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자 폭주(avalanches)가 국지적으로 전기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번개 발생을 부추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한다. 드와이어는 “뇌우가 엄청난 양의 이온화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구름 내부 일부 영역에서 전하가 부분적으로 방전되면서 다른 구역에서는 전기장이 급격히 강화될 수 있다”며 “이 전기장 상승이 번개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마리살디는 ALOFT 연구 결과를 두고 “뇌우 내부에서 발생하는 상대론적 에너지 전하 가속 과정은 열대성 대류 구름에서 매우 보편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감마선이 그런 극한 환경을 가리키는 지표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이번 관측을 통해 ‘글로우 상태의 뇌우가 번개 생성의 전제 조건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제시됐다. 글로우가 특정 구역에서 FGFs나 TGFs 같은 불안정 현상을 유발해 결국 번개가 생성되는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또 다른 비행 관측을 통해 이를 검증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더 높은 위도에서 발생하는 폭풍의 감마선 방출을 확인해볼 계획이며, 특히 번개 활동이 왕성하기로 유명한 중앙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열대 지역도 주요 관찰 대상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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