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금까지 천문학자들이 확인한 외계행성은 5,000개가 넘는다. 그러나 가장 흥미롭다고 손꼽힐 만한 행성이 최근 새롭게 눈도장을 찍었다. 중심별 주위를 맴돌며 한편으로는 불타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얼어붙을 듯한 혹성 ‘HD 20794 d’가 그 주인공이다. 학계 발표에 따르면 이 별은 태양과 유사한 HD 20794를 모항성으로 두고 있으며,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이 행성에 이미 보고된 HD 20794 b와 c라는 두 ‘형제’ 행성이 있어 d를 이름에 달았다.
‘HD 20794 d’의 최소 질량은 지구의 6.5배 정도로 추정된다. 덩치가 크지만 지구처럼 주로 암석으로 이뤄진 슈퍼지구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으나, 그 대신 두꺼운 가스층이나 깊은 바닷물이 표면을 덮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행성의 647일 주기는 매우 특이하다. 한쪽 궤도 지점은 화성보다도 훨씬 멀리 떨어져 혹독하게 추울 것으로 보이며, 반대편에서는 금성처럼 뜨겁게 가까워진다. 이렇게 ‘원형에서 크게 벗어난’ 궤도 덕분에, HD 20794 d는 그 별의 생명 거주가능 영역(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범위) 내를 지날 때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거나 얼어붙을 위험을 모두 안고 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HD 20794 d가 지구로부터 불과 20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우주망원경이 좀 더 직접적이고 심층적인 관측을 시도하기에 매력적인 대상임을 의미한다. 이 ‘얼음과 불’의 행성이 실제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인지, 수십 년 뒤 본격화될 차세대 망원경들이 정밀 영상을 통해 기후 변동을 찾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이고 있다.
HD 20794는 에리다누스자리 방향에 위치한 별로, 맨눈으로도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밝다. 이 밝기는 외계행성 사냥꾼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해 여러 연구팀이 오랜 기간 집중 관측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있다, 없다”를 반복하며 불확실한 신호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이 별을 맴도는 행성을 찾는 주요 방법은 별이 제자리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움직임(시선속도)을 포착하는 것이다. 행성 질량이 작거나 궤도가 넓을수록 별에 가해지는 잡아당김이 미약해, 해당 신호는 극도로 희미해진다. 실제로 HD 20794 d가 별에 주는 흔들림은 초당 1m도 되지 않으며, 그 주기 또한 약 2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이렇게 미미한 신호를 잡아내면서도, 별 자체에서 일어나는 폭발적 활동이나 장비 오류 등 다른 가능성을 배제해야 하기에, 이 작업은 수십 년에 걸친 섬세한 노력이 필요했다.
연구진은 20년에 걸친 자료를 활용했는데, 칠레의 유럽남방천문대(ESO)에 설치된 HARPS와 ESPRESSO 같은 정밀 분광장비가 주된 역할을 맡았다. 결정적이었던 건 새로 도입된 YARARA라는 자료 분석 기법이었다. 이 알고리즘은 옥스퍼드대학교의 미카엘 크레티니에 박사가 연구를 이끌었으며, 미세한 행성 신호를 잡아내는 데 성공해 2022년 처음 제기됐던 HD 20794 d의 존재 여부를 확고히 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또한 이미 알려진 b, c 행성을 재확인하면서, 2011년에 보고된 또 다른 후보 행성은 확실히 ‘오검출’이었음을 보여줬다. 연구 공동저자인 제네바대학교의 자비에 뒤무스크는 “새로운 분석 방식 덕분에 HD 20794 d의 존재가 매우 확실해졌다”면서도, 실제로 이 행성이 어떤 모습으로 이뤄져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HD 20794 d의 실제 질량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번 관측은 어디까지나 별의 흔들림을 통해 ‘최소 질량’을 추정했을 뿐이다. 외계행성 연구자인 미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의 런위 후 박사는 “만약 진짜 질량이 6.5배 정도라면 단단한 암석형 행성일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두꺼운 수소층이나 심해를 머금고 있을 수도 있으니 아직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 나사 외계행성 과학연구소(NExScI)의 제시 크리스천슨 수석연구원도 비슷한 시각이다. 지금까지 ‘통과 현상(트랜짓)’을 보여 별 앞을 지나가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부 외계행성에서는 밀도와 조성비를 직접 측정할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 질량이 큰 행성 상당수가 암석형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물론 그중에도 암석행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한 3분의 1 정도는 암석형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데, 이 정도 확률이면 더 연구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행성의 조성은 이 물체가 실제로 ‘생명체 거주 가능성’을 지닐 만한 환경인지 파악하는 데도 중요하다. 노트르담대학교의 천체물리학자 로런 바이스는 “생명이 있든 없든, 행성 표면에서 벌어지는 화학 반응이 핵심인데, 이 반응은 2차원 표면에서 더 활발히 이뤄진다고 여겨진다”며 “바닷물 표면이든 암석 지층이든, 행성이 실제로 딱딱한 표면을 갖고 있느냐 여부는 큰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또한,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듯한 극단적 온도 차이를 고려하면 행성의 물리적 특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뒤무스크는 “만약 두꺼운 물층이 존재한다면, 심해압 때문에 뜨거운 온도 변화에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구에서도 바다 깊은 곳에서 생명이 탄생했으니, 이 행성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실제로 NASA와 ESA 모두 HWO와 LIFE 프로젝트 검토 초기부터 HD 20794를 잠재 후보군에 넣었다고 한다. 후 박사는 “최종 타깃이 선정된 건 아니지만, 후보로 거론될 목록은 이미 작성되고 있다”며 “이 시스템에 ‘거주가능 영역을 한동안 지나가는, 암석일 수도 있는’ 행성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망원경을 향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스는 “결국 제2의 지구를 찾는 작업은 지구라는 행성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기원을 탐구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른 외계행성의 환경을 관찰하고 그 특성을 파악할수록, 우리 태양계가 어떻게 이 시점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우주의 어디쯤, 어떤 시점에 놓여 있는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강력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