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중력 이상 현상이 인도양 한복판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멍’이란, 바닷물이 휩쓸려 내려가는 실제 구멍은 아니다. 지질학적으로 ‘중력이 낮은 지역’을 일컫는 표현일 뿐이다. 왜 이런 거대한 중력 저(低)지대가 형성됐는지, 최근 한 연구가 마침내 유력한 답을 내놓았다. 아프리카 대륙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맨틀 기둥(plume)이 오래전 바다였던 ‘테티스 해(Tethys Ocean)’의 잔해를 움켜쥐고 있으며, 그 영향이 인도양 지반까지 이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 ‘이상적인 지구’라면 어디서나 중력 똑같아야
우리가 사는 지구가 완벽한 구형이었다면, 모든 지점의 중력은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지구는 북극·남극 방향으로 살짝 눌린 타원 형태이며, 또 적도 부분이 볼록하게 부풀어 있다. 게다가 지각, 맨틀, 핵의 밀도 분포에 따라 위치마다 중력 세기가 달라진다. 과학자들은 지상 관측장비와 위성 등을 통해 각 지역의 중력을 측정하고, 바람·조석 등 다른 요소를 제외해 ‘중력만으로 결정되는 해수면 모형’을 만든다. 이 과장된 시각화 지도를 ‘지오이드(geoid)’라고 부르는데, 독일 연구소에서 개발된 모형이 감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포츠담 중력 감자(Potsdam gravity potato)’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인도양 지오이드 저점(Indian Ocean geoid low, IOGL)은 지구에서 가장 두드러진 중력 이상 지역이다. 면적만 3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으며, 인도 남단에서 남서쪽으로 약 1,200km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중력이 낮다 보니 주변보다 해수면이 무려 106m나 낮아진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육안으로 이 물웅덩이를 볼 순 없다. 수평선에서 바닷물은 여전히 평평해 보이지만, 중력을 고려해 측정해보면 ‘보통 해수면’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인도 방갈로르 소재 인도과학연구소(IISc)의 지구물리학자 아트레이 고쉬에 따르면, 이처럼 큰 스케일을 지니는 ‘중력 구멍’은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인 중력적 요철 중 하나다. 이 지점이 처음으로 보고된 것은 1948년, 네덜란드 지구물리학자 펠릭스 베닝 마이네스가 배를 타고 중력 측정을 했을 때다. 이후 다른 선박 조사와 위성 데이터로도 확인됐다. 하지만 왜 이런 중력 이상지대가 형성되었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 “아프리카 대륙 밑 거대 솟아오름(플룸) 탓”… 시뮬레이션으로 추적
이를 규명하기 위해 이번 연구의 주저자인 데반잔 팔(IISc 박사과정)과 고쉬는 1억4천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인도양 지역의 지각 변동을 컴퓨터 모델링으로 재현했다. 그 과정에서 맨틀 내부 대류 흐름 변수들을 조합해 여러 가지 가설을 점검했는데, 그 결과 인도양 지오이드 저점이 나타나는 데는 아프리카 대륙 밑에 숨어 있는 ‘아프리카 블롭(blob)’이라 불리는 거대 저속 전단속도 지대(LLSVP)와 특별한 맨틀 구조가 결합된 결과라는 결론이 나왔다.
고쉬는 “아프리카 블롭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뜨겁고 밀도가 낮은 물질이 인도양 밑까지 퍼져나와 지오이드가 낮아진 지대를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팔은 여기에 더해, ‘테티스 해’ 바닥이었던 해저 지각(슬래브)이 오래 전 맨틀 깊숙이 가라앉았는데, 이것이 맨틀 경계 부근에서 다시 솟아오르는 마그마 플룸을 일으키고, 이 흐름이 중력 저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지질학계에서는 테티스 해가 2억 년 전 초대륙 로라시아와 곤드와나 사이에 자리 잡았다고 본다. 아프리카와 인도는 둘 다 곤드와나에 속해 있었고, 지금의 인도가 북쪽으로 이동해 테티스 해를 밀어내며 인도양을 형성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콜로라도대학교 볼더캠퍼스 지구물리학자 시지에 중은 “우리는 종종 아프리카와 태평양 밑 ‘슈퍼플룸’처럼 양(+)의 중력 이상 현상에만 주목해왔다”면서 “인도양 지오이드 저점은 지구 중력 이상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례임에도 상대적으로 연구가 많지 않았다”며 이번 연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2천만 년 전 형태 완성… “수백만 년 뒤 사라질 수도”
연구진은 인도양 지오이드 저점이 약 2천만 년 전, 아프리카 블롭에서 솟아오르던 맨틀 플룸이 상부 맨틀을 본격적으로 채우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췄다고 본다. 이 플룸의 흐름이 계속되는 한 ‘구멍’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만약 뜨거운 맨틀 물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중력 이상지대가 점차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팔은 “온도 차이가 일으키는 맨틀 대류가 현재 위치에서 벗어나면, 이 중력 저점 역시 흐릿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 이번 발견은 심해 바닥부터 맨틀 깊숙한 곳까지, 그리고 2억 년 전 형성된 고대 해양 지각까지 아우르는 드라마틱한 지질 변동이 오늘날 지구 중력 지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양 한가운데 존재하는 ‘중력 구멍’은 바로 그 진화 과정을 담은 증거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