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고리 벗고 잠시 사라지다… 2025년 ‘무지의 토성’ 볼 수 있을까
토성, 고리 벗고 잠시 사라지다… 2025년 ‘무지의 토성’ 볼 수 있을까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저녁하늘에서 금성 근처에 떠 있는 토성이 뭔가 묘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워낙 밝기로 유명한 금성 옆에선 무슨 천체든 상대적으로 빛이 바래 보이긴 마련이지만, 요즘 토성은 유난히 어둡게 보였다.  이는 토성의 상징인 ‘찬란한 고리(rings)’가 마치 사라진 듯 얇게 보이는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넓직했던 고리가 지금은 거의 ‘실선’처럼 보일 정도로 폭이 좁아져, 반사광을 뿜던 얼음 조각들의 효과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성 전체 밝기가 다른 시기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안심해도 된다. 토성의 고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얇은 형태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기에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 지구와 토성 각각의 공전 궤도와 축 기울기 차이로 인해, 우리가 보는 각도에 따라 시점이 달라지는 것도 한몫한다. 토성의 고리는 그 행성을 상징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태양계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아름다운 구조물 중 하나로 꼽힌다. 주요 고리의 직경은 약 28만 킬로미터에 달해,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3분의 2 이상을 덮을 정도로 광활하다. 하지만 토성은 지구에서 10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그 거대한 고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망원경만 조금 들이대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해, 갈릴레이가 17세기 초에 이미 관측했을 정도다.

물론 갈릴레이의 망원경 해상도는 낮아, 고리가 온전한 형태로 보이지 않고 “토성에 달린 귀처럼” 보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네덜란드 천문학자 호이헌스(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태양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고리’가 토성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아냈고, 이 고리가 단단한 물질이 아니라 작은 물질 조각들이 모여 있는 구조라는 사실은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이론적 해석 등으로 점차 드러났다. 지금은 주로 물 성분(물 얼음 덩어리)으로 이뤄져 반사율이 높다는 사실, 그리고 대부분 자동차보다 작은 덩어리로 구성돼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 얼음 덩어리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신비로 남아 있다.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토성 주변의 얼음 위성이 거대한 충돌을 겪어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이다. 충돌 상대가 다른 천체였을 수도, 토성의 또 다른 위성이었을 수도 있다. 최근 연구 중에는 이 고리가 비교적 ‘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있다. 고리를 덮고 있는 어두운 미소운석 먼지의 양을 근거로, 1억~4억 년 전 사이에 생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먼지를 실제로 쌓이게 하는 충돌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토성 자기장 등 여러 요인이 먼지 축적 속도를 늦출 수 있어서 고리가 훨씬 오래됐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어쨌든 ‘압도적으로 납작하다’는 특징만큼은 분명하다. 가로로 수십만 킬로미터 뻗어 있음에도, 두께는 많아야 1킬로미터 안팎이다. 어떤 구간은 10미터 남짓밖에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를 종이 한 장 두께로 비교하면, 토성과 고리를 종이 길이(약 28cm)에 축소시켰을 때, 고리는 종이보다 100배나 얇은 셈이 된다. 거기에 토성의 대형 위성들이 각기 중력으로 고리 파편을 조금씩 다른 궤도로 끌어당긴 결과, 무수히 많은 고리와 군데군데 빈 틈이 형성됐다. 지금 토성이 그 고리를 ‘숨기고’ 있는 것은 공전과 자전축 기울기 때문이다. 지구처럼 토성도 공전면(황도면)에 대해 축이 기울어져 있는데, 약 26도가량이다(지구는 23도). 이 때문에 토성이 태양 주위 한 바퀴(약 29.5년)를 도는 동안, 어떤 시기에는 고리가 활짝 펼쳐진 채 우리에게 보이고, 다른 시기에는 고리가 옆면만 보이게 돼 아주 가늘어진 것처럼 보인다. 특히 토성에 ‘춘분’이나 ‘추분’이 올 때, 고리는 거의 옆면 상태가 되어 마치 사라진 듯 희미해진다. 마침 토성의 다음 ‘가을’은 2025년 5월로 예정돼 있다. 그리고 올해(2025년) 3월 23일경에는 지구가 토성 고리면을 통과해, 우리가 볼 때 고리가 거의 완벽히 옆면으로 맞춰지는 극점에 도달한다. 다만 그 시점에는 토성이 태양과 고작 10도 각도 차이밖에 내지 않아 태양 빛에 묻혀 관측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시기가 너무 좋지 않다.

토성이 다시 지구 궤도면을 통과하는 시점은 11월 중순으로, 이때는 토성의 축 기울기가 약간 바뀌어 고리가 ‘완전하게’ 옆면은 아니지만 여전히 예전보다 훨씬 가늘게 보일 예정이다. 게다가 11월에는 토성을 해 진 뒤 남쪽 하늘에서 좀 더 편하게 관측할 수 있어, 궤도가 잘 갖춰진 천문대나 아마추어 천문 동호회가 있다면 ‘무지(無指) 토성’을 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7년 전에도 고리가 이런 식으로 얇아졌을 때, 모습이 너무나 달라 “이게 정말 토성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리가 다시 펼쳐져, 환한 빛을 온전히 내는 장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토성은 고리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모습이 완벽히 어우러져 있다. 조만간 시간이 흘러, 토성이 다시 그 웅장한 반지들을 자랑할 순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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