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오랜 옛날 인류는 ‘하루’를 지구가 자전 축을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시간, 즉 해가 뜨고 지는 주기로 정했다. 이를 24시간으로 나누어 쓰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 자전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다 보니, 실질적으로 하루가 미세하게 길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정밀 원자시계는 결코 늦춰지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의 시간 표준 기관들은 이 차이를 맞추기 위해 ‘윤초(閏秒)’를 도입해왔고, 1972년 이후 총 27번이나 ‘1초를 더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처음으로, 오히려 윤초를 ‘빼야’ 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 1990년 전후를 기점으로 지구 자전이 빨라져, 느려지는 경향을 상쇄하고 하루 길이가 약간 짧아졌기 때문이다. 왜 이런 반전이 생겼는지에는 복잡한 원인이 있지만, 대략 두 가지 주요 설명이 거론된다.
이 상황을 두고, 윤초 제도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1초를 더하거나 뺄 때마다 수많은 컴퓨터와 통신 장치의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IT 인프라가 촘촘해진 현대사회에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원자시계를 관리해 전 세계 컴퓨터가 시각을 동기화하도록 지원하는데, 일상적으로도 하루에 1000억 회 이상의 시간 조정 요청을 받는다. 윤초가 추가됐던 2012년엔 대형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이 갑자기 중단됐고, 콴타스 항공사 예약 시스템에도 문제가 생겨 호주 전역에서 항공기 운항이 지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구 자전 속도와 원자시계가 1초나 1분 정도 어긋나는 걸 그냥 무시하는 건 어떨까? 어차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는데, ‘지구 자전 주기’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정말 중요한 문제일까?
지구가 자전하는 이유는 태양계가 초기에 회전하는 가스·먼지 구름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은 마찰이 거의 없으니, 행성들은 처음 생긴 회전 운동을 계속 유지한다. 그런데 달의 중력이 지구에 작용해 밀물과 썰물(조석)을 일으키면, 해저와 마찰이 생겨 지구 자전을 조금씩 늦춘다. 공룡 시대에는 하루가 약 23.5시간이었다고 알려지는데, 조석 마찰이 서서히 자전 속도를 떨어뜨려 지금의 24시간 언저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진파 관측으로 보면, 지구 내부는 고체 내핵, 액체 외핵, 그리고 암석질 맨틀과 지각이 층을 이루는 구조다. 외핵의 유동 상태가 맨틀의 자전 속도를 매년 조금씩 바꾸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변화는 상쇄되기 쉽다. 그래서 전반적으론 ‘조석 마찰에 의한 자전 속도 감속’이 오랫동안 확인된 추세였다.
하지만 1990년 무렵부터 지구가 미묘하게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윤초를 추가하는 주기가 예전보다 길어졌다. 1970년대에는 거의 매년 1초를 더해야 했지만, 2010년대에는 3~4년에 한 번꼴이 됐고, 계산상으로는 2026년이면 자전 가속이 감속을 능가해 ‘윤초를 빼야 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고 전망됐다. 여기에 최근 지구온난화가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올랐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 북극·남극의 거대한 빙상이 녹으면서, 빙하 아래에 눌려 있던 지각이 서서히 원래 상태로 올라오는 ‘반발(rebound)’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각이 더 둥글어지면, 질량이 축 주변으로 조금 더 가까워져 ‘피겨 스케이터가 팔을 오므리면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 것처럼 지구 자전이 가속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빙하가 녹은 물은 대체로 저위도 지역(적도 쪽)에 퍼지는데, 이 부분은 지구 자전축에서 더 먼 곳이다. 이는 ‘스케이터가 팔을 다시 벌린 경우’처럼 지구 자전을 느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현재로선 후자가 좀 더 강해, 자전 가속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최근 한 논문에 따르면 이 영향 때문에 실제 ‘음의 윤초’를 적용해야 하는 시점은 2029년 정도로 미뤄질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예측이 오락가락하니, “윤초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야 하느냐”라는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애당초 조석 마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방향이라면, 설령 이번에 한두 번 윤초를 뺀다 해도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윤초를 빼는’ 상황을 고려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결국 “지구의 자전 주기에 맞춰 원자시계를 정확히 맞춰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문제가 남는다. 미 캘리포니아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지구물리학자 던컨 캐르 애그뉴는 “대다수 사람에게, 태양 위치와 원자시각이 1초씩 어긋나는 게 별 큰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1초씩 자주 맞추기보다는, 100년에 한 번 크게 맞추는 방식이 낫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지지한다. 그렇게 하면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이미 국제 도량형 총회(GCPM)에서도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다. 2022년에 이들은 “2035년 이후부터 더는 윤초를 추가하지 말자”고 투표했다. 그 뒤에는 20년 주기나 100년 주기로 한 번씩 거대한 조정을 하자는 제안이 있다. 미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시간·주파수 담당 책임자인 엘리자베스 돈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일관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시간은 국제단위계(물리 상수 등)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다른 기준들도 여기에 많이 의존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구글 등 일부 대형 인터넷 기업은 자체 방식으로 소규모 ‘스머어(smear)’ 기법을 적용한다. 하루에 밀리초 단위로 시간을 조금씩 이동해, 윤초를 굳이 크게 조정하지 않는 식이다. 이런 시도가 전 세계 표준 시간계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돈리는 “그 규모가 커지면 무질서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십 년 뒤에 한 번씩 크게 맞추는 방식을 쓴다면, ‘천문학적 시간(지구 자전으로 정한 UT1)’과 ‘원자시계에 기반한 UTC’ 간의 오차가 꽤 쌓일 것이다. 그러나 돈리는 “컴퓨터 네트워크는 태양이 하늘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는 관심이 없다”며, 실질적 문제는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