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 파묻혀 있을 때는 실감하기 어렵지만, 우주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골치 아픈 난제들이 넘쳐난다. 대표적인 예가 ‘암흑물질’이다. 빛을 내는 별과 은하가 보여주는 중력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설명해주는 ‘암흑’ 성분이 있다는 가설이다. 여기에 우주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암흑에너지’ 문제도 있다. 또 이 암흑에너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형태(진화형)일 수 있다는 가설로, 이른바 ‘허블 긴장(Hubble tension)’이라 불리는 우주 팽창률의 모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이처럼 풀리지 않는 우주적 미스터리에 많은 학자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대부분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이런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지만, 혹자는 정반대의 접근을 한다. “아인슈타인 이론 자체를 조금 고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이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도입하는 대신 중력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업데이트하자는 발상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변형 뉴턴역학(MOND)’은 암흑물질을 대체하려 했지만, 여러 관측 결과에 따르면 결국 암흑물질의 존재를 완전히 배제하기도 힘들었다. 거대한 우주 공간의 ‘공간적 빈 부분(보이드)’이 실제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하는 ‘타임스케이프(timescape)’ 우주론은 암흑에너지를 설명하려 했으나, 이 역시 독자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신이론들 대신, 아인슈타인이 직접 만들어놓았던 오래된 틀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 1928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지 10여 년 후 아인슈타인은 독특한 또 다른 이론에 관심을 쏟았다. 이른바 ‘텔레패럴렐 중력(teleparallel gravity)’이라는 개념으로, 일반상대성이론에 나오는 ‘곡률’ 대신 ‘비틀림’을 활용해 중력을 묘사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통해 중력과 전자기력을 동시에 하나의 방정식으로 묶으려 했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 시대의 물결에 집중하며, 아인슈타인의 오래된 시도가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 이론가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텔레패럴렐 중력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이 최종적으로 시도했던 ‘전자기력 통합’ 부분을 포기하자, 일반상대성이론과 ‘수학적으로 동등’한 형태의 텔레패럴렐 모형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 즉, 우주 중력을 곡률 대신 비틀림으로 표현해도 기존 일반상대성이론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2017년에 벌어진 중력 이론 분야의 커다란 이벤트 덕분에 텔레패럴렐 중력이 새롭게 주목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중성자별 충돌이 관측됐는데, 거기서 나온 중력파와 전자기파(빛)가 약 1억 3천만 광년을 동시에 달려 지구에 불과 3초 차이로 도달했다. 중력의 속도와 빛의 속도가 사실상 같다는 강력한 증거였는데, 이는 “중력이 빛보다 조금 느릴 수 있다”고 예견하던 여러 수정 중력이론들을 단숨에 폐기시켰다. 하지만 텔레패럴렐 중력은 여기서 살아남았다. 문제는 텔레패럴렐 중력이 일반상대성이론보다 훨씬 복잡한 수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미 10개나 되는 연립방정식으로 악명 높은 일반상대성이론보다 더 난해한 체계인 것이다. 이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한편으로는 중력을 미세하게 수정해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없이도 관측 결과에 들어맞을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러나 그 복잡성 탓에 이를 새롭게 배우려는 이론물리학자들도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다. 또 너무나 많은 ‘수정안’을 만들 수 있어, 무엇이 진짜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인지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학계 주류 바깥에서 조용히 연구가 이어지는 이유도 바로 그 복잡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패럴렐 중력에 관한 연구는 두 갈래로 진척되고 있다. 하나는 텔레패럴렐 중력 자체가 일반상대성이론과 동등한가를 엄밀히 검증하는 작업이다. 과연 행성의 궤도나 블랙홀 주변 환경, 빅뱅 과정 등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맞춰온 관측 결과들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며, 이는 다른 한 갈래 연구, 즉 텔레패럴렐 중력으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해명하려는 시도를 고무시킨다. 물론 암흑물질의 존재와 우주 가속팽창, 허블 긴장 같은 현상들을 한꺼번에 설명하려면 갈 길이 멀다. 관측 데이터가 방대하고, 텔레패럴렐 중력 자체도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존 과학계의 회의적인 시선을 돌려세워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진정한 돌파구가 되려면,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았을 때처럼 결정적인 예측을 제시하고, 그것이 관측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만약 이 이론이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 중 하나라도 성공적으로 ‘필요 없는 가설’로 만드는 동시에 우주가 실제로 보이는 모습을 더 깔끔하게 설명해준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남긴 ‘비틀림’이라는 힌트가, 지금껏 학계가 애써 찾아 헤맨 우주의 암흑 수수께끼를 풀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아인슈타인이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방식으로 ‘또 한 번’ 우주의 비밀에 접근한 셈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