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달 탐사 시대, 파이어플라이 ‘블루 고스트’ 달 착륙에 성공
민간 달 탐사 시대, 파이어플라이 ‘블루 고스트’ 달 착륙에 성공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미국의 민간 기업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운영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자금을 지원받은 달 착륙선 ‘블루 고스트’가 달 표면 안착에 성공했다. 우주에 머문 지 45일 만인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 34분(동부표준시), 박스형의 자동차 크기를 가진 이 착륙선은 달 북동부 근방에 위치한 고대 충돌분지 ‘크리시움 해’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네 개의 다리에 달린 패드가 달 토양을 움켜쥔 순간은, 1972년 유인 아폴로 17호 이후 미국이 달에 연착륙한 두 번째 사례가 됐다. 첫 번째는 1년여 전, 인튜이티브 머신즈(Intuitive Machines)가 만든 상업용 착륙선 ‘오디세우스’가 남극 부근 분화구 근처에 기울어진 채 살아남았을 때다. 다만 또 다른 미국 기업 아스트로보틱(Astrobotic)의 착륙선 ‘페레그린’은 2024년 1월에 달 접근에 실패했다.

텍사스 시더 파크의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 미션 콘트롤 센터 근처에서 진행된 착륙 장면을 지켜본 NASA 과학임무본부의 니키 폭스 부국장은 “드디어 달에 착륙했다!”며 환호했다. 같은 자리에서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의 제이슨 킴 CEO는 “착륙 순간까지 모든 게 시계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졌다”며 “달 표면에 달 먼지를 묻혔다!”고 말했다. 착륙 직후 파이어플라이 에어로스페이스 부사장 브리제트 오크스는 실시간 방송에서 “우리 팀이 정말 자랑스럽다. 파이어플라이는 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 이번 착륙이 그 결정적 예”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달에 영구적 흔적을 남겼다. 파이어플라이 모든 직원의 이름이 새겨진 블루 고스트 명패가 달 표면에 있다”고 소개했다. “이젠 우리가 밤하늘의 달을 볼 때, 우리 가족의 이름이 저 위에 있다고 미래 세대에게 말해줄 수 있다.” 현장 축하 행사에 참석한 NASA의 자넷 페트로 대행 국장 역시 “달 착륙을 직접 지켜볼 수 있어서 정말 흥분된다”며 “이번 행정부가 ‘미국 우선’을 강조하는 만큼, 우주 분야에서도 우리가 달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달 영역을 계속 선도해간다면 미국을 더욱 자랑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블루 고스트는 달에 도착한 뒤 약 2주간 NASA의 10가지 과학·기술 실험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NASA가 추진 중인 상업용 달 택배 서비스(CLPS) 사업의 일환으로 달에 실린다. CLPS는 여러 미국 기업을 선정해 달 화물·실험장비 운송을 맡기는 민관 협력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향후 수십억 달러의 예산이 배정되어 있으며, 2020년대 말까지 우주비행사를 달에 복귀시키려는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블루 고스트까지 포함해 CLPS가 이제까지 지원한 미국 기업의 달 착륙 도전은 모두 세 번이었다. NASA는 2028년까지 최대 26억 달러를 투입해 여러 차례의 임무를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 주자로는 이미 달을 향해 비행 중인 인튜이티브 머신즈의 아테나(Athena) 착륙선이 꼽힌다. 아테나는 3월 6일 착륙을 목표로 하며, 남극에서 약 160km 떨어진 ‘몽스 무통’이라는 평평한 산에 내려앉을 계획이다. 성공한다면 약 10일 동안 작동할 예정이다.

모든 일정이 예상대로라면, 블루 고스트와 아테나는 3월 14일에 지구 그림자가 달을 살짝 가리는 월식 장면을 함께 지켜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틀 뒤부터 시작될 달의 밤은 보통 2주간 이어지는데, 그 기간 극도의 냉각과 어둠 속에서 두 착륙선 모두 작동을 멈출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일본 기업 아이스페이스(ispace)가 만든 달 착륙선 ‘레질리언스(Resilience)’도 5월경 달 극북단 부근 ‘프리고리스의 바다(Mare Frigoris)’에 착륙을 시도할 예정이다. 2023년 첫 임무가 추락으로 끝났던 아이스페이스의 두 번째 도전이다. 레질리언스는 블루 고스트와 함께 올해 1월 중순에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지만, 상대적으로 연료 절약이 큰 궤적을 선택해 느리게 달로 향하고 있다. 한 시기에 달을 향해 나아가는 착륙선이 셋이나 되는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블루 고스트에 탑재된 NASA의 10개 페이로드에는 달 토양 샘플을 직접 채집·분석하는 장치, 다양한 재질에 묻는 달 먼지를 어떻게 제거할지 실험하는 연구 장비, 착륙 때 발생하는 먼지를 관측하는 카메라, 우주 기상을 감시하는 카메라 등이 있다. 또 레이저 신호를 통해 지구-달 거리를 정밀 측정할 수 있는 레트로리플렉터와, 지구 저궤도 위성에서 방출되는 GPS 신호를 활용해 달 표면 내비게이션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기기도 실렸다. 이 가운데 달 내부를 깊이 조사할 장비들은 향후 달의 45억 년 역사를 새로 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ASA 측 설명에 따르면, 블루 고스트가 착륙한 크리시움 해는 아폴로 시대에 수집된 어떤 표본보다도 달의 평균적인 지질 구성을 더 잘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LISTER’라는 시추 장비는 달 표면 아래 최대 3m 깊이까지 뚫을 수 있어, 달 내부에서 올라오는 열 흐름을 직접 측정한다. 이는 달이 수십억 년 전 뜨거운 마그마 상태에서 지금처럼 차가운 세계로 식어간 과정을 더 명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LMS’(Lunar Magnetotelluric Sounder)는 약 700제곱미터 넓이에 전극을 배치해 미세한 전기·자기 흐름을 측정한다. 이는 달 지각 깊숙이, 최대 1000km 이상 내부 구조까지 탐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새롭게 밝혀질 달 내부의 구조는, 금성이나 화성, 그리고 지구의 깊은 진화를 이해하는 단서로도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블루 고스트는 달의 추운 밤을 몇 시간 정도만 견딜 수 있는데, 밤이 오기 직전 ‘달 일몰’ 때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 달에서는 해가 천천히 저물며, 석양 뒤편으로 달 표면의 미세 충돌과 정전기로 인해 먼지가 부양되면서 ‘달 지평선 빛(lunar horizon glow)’이라는 희미한 광채가 펼쳐진다. 이는 1972년 아폴로 17호에 탑승했던 유진 서넌이 목격해 화제가 된 현상이다. 블루 고스트는 이 장관을 고해상도 영상으로 지구에 전송하고 난 뒤, 길고 긴 달밤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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