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캐나다 소재 기업 D-웨이브(D-Wave)가 개발한 양자프로세서가,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수십만 년’ 걸릴 법한 자성(磁性) 물리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풀어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advantage)’를 보여 준다는 또 하나의 선언이다. 구글을 비롯해 여러 업체가 이미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D-웨이브 측은 이번이 “실제로 물리학적으로 의미 있는 문제”를 최초로 해결한 사례라고 발표했다. 회사의 물리학자 앤드류 킹 박사는 “누군가 과학적으로 관심도 높은 실제 문제를 양자로 풀어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뉴욕 플랫아이언연구소의 마일스 스타우덴마이어 박사는 “클래식(고전) 방식도 아직 건재하다”며,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화 모델로 꾸준히 발전” D-웨이브는 보편적으로 어떤 양자 알고리즘도 구동 가능한 이른바 ‘범용 양자컴퓨터’ 대신, 특정 계산에 집중하는 양자 방식(어닐링)으로 일찍부터 하드웨어를 개발해 왔다. 양자 분야 초기부터 수천 개의 큐비트(qubit·양자 정보 단위)를 가장 먼저 확보한 기업이기도 하다. 회사의 또 다른 선임물리학자인 모하마드 아민 박사는 “이 성과는 D-웨이브가 25년간 쌓아온 하드웨어 연구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D-웨이브가 해결했다는 문제는 자성 분야에서 고전적인 “전자 스핀” 모델로, 물질 내부에서 원자 하나하나의 스핀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예측하는 과제다. 보통 영하 절대온도에서 출발해 양자적 요동에 따라 상태가 변하는 과정을 계산한다. 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계의 전형적 예시이자, 양자 효과가 추가돼 예측 난도가 특히 높은 사례다.
D-웨이브팀은 최신 기기인 ‘Advantage2’ 양자프로세서를 활용해 3차원 결정구조에서 스핀 배열을 시뮬레이션했다. 계산 속도는 고전적 방식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오래 걸릴 작업인데, 이 양자 장치로 ‘단숨에’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잇따른 ‘양자 우위’ 논란 양자 우위는 지난 2019년 구글이 처음 선언해 큰 파장을 낳았다. 당시 구글은 초전도 큐비트로 구성된 ‘보편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실제 활용도는 낮지만 양자 우위를 입증하기 위한 특정 작업을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그러나 IBM 등 일부 업체가 기존 컴퓨터 기법을 개선해, 결국 유사 연산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이후 2023년 IBM도 “유용한 분야에서 양자 우위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가, 스타우덴마이어 박사 등 연구진의 반박으로 곧바로 도전을 받았다. 이들은 고전 알고리즘을 더욱 최적화해 IBM 측 계산 속도를 따라잡았다고 주장했다.
최근 D-웨이브가 발표한 사전 논문(프리프린트)에 대해서도 비슷한 도전이 이어졌다. 스타우덴마이어 박사가 속한 팀은 고전 알고리즘을 더욱 개량해, D-웨이브가 시도한 일부 계산을 재현해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D-웨이브 논문의 공동저자이자 스위스 ETH 취리히의 후안 카라스키야 박사는 “그럼에도 고전적 접근으로 우리 전체 결과를 모두 대체하긴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또 다른 연구팀도 얼마 전, D-웨이브 측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논문을 공개한 상황이다. D-웨이브의 킹 박사는 “상대팀이 달성한 것은 우리가 연구한 문제 중 일부 영역에 불과하다”며, “그들이 고전 컴퓨팅 수준을 높이긴 했지만, 우리와 같은 수준에 이른 건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경쟁은 ‘진행 중’ 반면 스타우덴마이어 박사 측은 현재 더 포괄적인 문제 영역까지 다룰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확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곧 시도해 볼 예정이고, 잘 될 것이라 믿는다”며 “고전 계산 기법이 어느 정도 속도로 발전 중인지 많은 사람이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국 D-웨이브의 새 연구는 또 한 번 “양자 우위가 증명됐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여전히 고전 계산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반론이 동시에 제기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만 이번엔 기계 자체가 실제 물리학 문제에 적용됐다는 점에서, 양자 장치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 준 의미 있는 사례라는 데에는 의견이 모아진다. 정말로 ‘양자 프로세서’가 고전 방식과 확실한 격차를 벌릴 수 있을지, 양측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