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팽창의 ‘성장 곡선’, 25년 만에 뒤집힐까…암흑에너지 ‘일정치 않다’ 흔들리는 표준모형
우주 팽창의 ‘성장 곡선’, 25년 만에 뒤집힐까…암흑에너지 ‘일정치 않다’ 흔들리는 표준모형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난해 12월 멕시코 칸쿤 해변의 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학회에서, 영국 포츠머스대학교 우주론 전문가 세샤드리 나다투르는 ‘우주의 성장 차트’를 극비리에 공개했다. 수백 명의 천문학자들은 이 발표를 접하고, 오랫동안 굳게 믿어 온 우주 팽창 이론이 수정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나다투르는 “지난 25년간 이뤄진 우주론 연구 중 가장 흥분되는 결과”라고 강조한다. 지난 30년간 과학계는 우주가 가속 팽창 중이지만, 그 속도(가속도)는 시공간 전체에서 거의 일정하다는 견해를 지지해 왔다. 이를 유발하는 신비한 힘이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불렸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암흑에너지 분광기(DESI)’ 팀의 관측이 암흑에너지가 꼭 상수처럼 변치 않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흔적’을 보여 주면서, 기존 표준 우주모형에 대한 문제 제기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새 데이터로 관측한 은하좌표 수가 거의 3배나 늘어난 가운데, 우주 팽창률이 시간에 따라 실제로 ‘출렁’일 수 있다는 더욱 강력한 증거를 내놓은 것이다. 우주 구성의 70%에 달한다고 추정되는 암흑에너지가 때로 강해지고 약해지며 우주 팽창에 영향을 미치는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감을 얻고 있다. 물론 이번 결과는 물리학자들이 ‘발견’이라고 부르는 확률 기준에 아직 미치진 않는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표준 모형이 적지 않은 위기에 봉착했다고 입을 모은다. 암흑에너지가 어떤 식으로든 변한다면, 물리의 기본 토대를 수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세기 전,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팽창 중임이 밝혀졌을 때, 과학자들은 물질(중력)에 의해 팽창 속도가 점점 느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초신성(supernova) 관측으로 실제 우주가 가속 팽창 중임이 확인되면서, 왜 우주가 점점 더 빨리 부풀어가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암흑에너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 표준 우주론에서는 아인슈타인이 1917년 제안한 ‘우주상수(Λ)’를 중력 방정식에 덧붙여 설명한다. 우주가 스스로 붕괴하지 않도록 진공에 일정한 에너지가 깔려 있다고 보는 가정이다. 그렇게 우주성장을 한쪽에서 떠미는 암흑에너지(우주상수)와, 다른 한쪽에서 잡아당기는 물질(보이는 물질 + 은하를 묶어주는 ‘차가운 암흑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우주의 역사가 전개됐다고 보는 게 우리가 배워온 ‘정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주의 팽창 속도와 우주물질 분포(덩어리짐, clumpiness)에 대한 다양한 측정이 불일치하면서, 표준 모형이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어떻게 가속 팽창하는지를 더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부지런히 관측 중이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는 고온의 플라스마와 광자가 역동적으로 뒤섞여 있었고, 이때 발생한 압력파(음향 진동)가 은하 형성의 씨앗이 되었다. 약 38만 년 후 온도가 충분히 낮아져 원자가 만들어지면서, 빛이 방해받지 않고 직진하게 됐다. 그 순간 ‘우주라는 호수’ 표면이 얼어붙듯, 특정 규모(약 4억 9천만 광년)로 굳은 파동이 지금까지 은하 분포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 ‘중입자 음향진동(BAO)’ 이론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퀸란 산에 설치된 DESI는 5,000개 로봇 팔을 이용해 매일 밤 20만 개 이상의 은하를 분광 관측한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해, 그 거리를 달리하는 여러 시점별 은하 분포에서 BAO 패턴을 찾아낸다. 여기에 우주배경복사(CMB) 및 초신성 측정 데이터를 결합하면, 우주가 110억 년 동안 어떻게 팽창했는지 3차원 지도로 복원할 수 있다. DESI 협력단(900명 규모)은 1차 연도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미 이때 일부 ‘찝찝한’ 징후가 보였다. 표준 모형 예측과는 약간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새 장비, 제한된 자료라는 이유로 조심스러웠다. 이번에는 은하 좌표가 1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1,500만여 개나 확보됐다. 연구진은 농담 삼아 “망원경 근처 살고 있는 고양이 밈지(Mimzi)가 키보드를 밟아 노출(관측)을 시작시킨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이번 결과가 아직 물리학 확증 기준(5σ)을 넘지 못했지만, 다양한 증거들이 표준 이론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연구진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정밀 검증과 추가 자료 수집을 해 나간다면, 암흑에너지 연구는 기존 우주모형을 넘어 새로운 물리 이론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건 마치 금광맥을 발견한 것 같다”라는 리스 박사의 평가는, 암흑에너지 분야가 여전히 큰 발견을 남겨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후속 연구에서 이 변덕스러운 암흑에너지의 ‘진짜 얼굴’이 밝혀지면, 우주의 기원과 최종 운명을 보는 패러다임도 크게 바뀔 공산이 크다. 과학계의 시선은 DESI 데이터가 던진 숙제의 ‘해답’으로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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