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맑은 여름밤 별들을 감상하려고 밖에 나갔는데, 고요한 밤하늘 대신 커다란 광고가 반짝이며 흐른다면 어떨까? 얼핏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이 장면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민간기업들이 소형 위성을 다량으로 띄워 지상에서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밝은 ‘우주 전광판’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로 물건을 쏘아 올리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아직 미숙한 위성 운용 기술이 그간 걸림돌이 됐지만, 지난해 4월 러시아 스타트업 ‘아방 스페이스(Avant Space)’가 “세계 최초의 우주 미디어 위성”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위성은 레이저를 장착한 저비용 초소형 위성 무리를 궤도에 배치해, 지구의 밤하늘에 기업 로고와 QR 코드 등을 새길 계획의 기술 시연용이었다.
이처럼 우주 광고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국제천문연합(IAU) 전 사무총장 피에로 벤베누티 박사는 지난 2월 열린 유엔 우주평화이용위원회(COPUOS) 산하 소위원회에서 “눈부신 우주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회원국 대표들에게 촉구했다. 러시아 등 104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자리에서 그는 “이런 광고 위성은 결국 지상 천문학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것은 궁극적 ‘광공해(light trespass)’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벤베누티 박사는 “굳이 쓸모없는 광고 목적으로 우주를 사용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유엔은 직접적인 발사 규제 권한이 없어도, 국제적 합의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런 시도가 확대되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 차원에서 모두가 이 문제를 잊지 않도록 계속 주의를 끄는 게 우리의 목표”라는 설명이다.
2020년, 러시아 정부는 아방 스페이스의 레이저 기반 기술 특허를 승인했다. 이는 기업 로고나 각종 이미지를 하늘에 투영해 선명한 광고로 만드는 아이디어다. 회사 측은 가까운 시일 내에 고객에게 “내 별을 직접 밝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방 스페이스와 협력하는 또 다른 러시아 업체 ‘스타트로켓(StartRocket)’의 블라드 시트니코프 대표는 “10년 내에 지구 상공 약 600km 궤도에 레이저 장착 소형 위성 200~400기를 배치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렇게 되면 매일 몇 시간씩 지상을 향해 광고를 투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우주가 단지 과학이나 군사만의 것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장이 되길 바란다”라는 게 시트니코프 대표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우주 광고 발상은 이미 예전에도 천문학계 우려를 샀다. 지상에서 맨눈으로 볼 정도로 밝다면, 지상 망원경이 그 빛에 간섭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2000년,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미 의회는 눈에 잘 띄는 우주 광고 페이로드 발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 전신인 1993년 법안 역시 “올림픽 개막식에 우주 광고판을 띄우겠다”는 조지아주 소재 업체의 제안을 계기로 불붙었다. 하지만 미국 외 국가에선 유사한 규제가 미비해, 아방 스페이스 같은 기업들로부터 “우주 광고가 현실화될 경우 이를 제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천문학자들의 시각이다.
또한 우주법 전문가들은, 특정 국가가 광고 위성을 금지해도 그 궤도가 타국 영공을 지나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COPUOS 대표단도 긴급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만일 누군가 내일 당장 광고 위성을 쏘아 올린다면, 공식적인 대응 기회 자체가 반년~1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존 바렌타인(미국천문학회 대표)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차라리 미국·중국·유럽연합 등 주요 우주강국이 ‘우주 광고는 싫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 진작에 규제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천문학계가 이렇게 신속하게 글로벌 금지 방안을 외치는 건, 과거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Starlink) 위성 다발이 예상을 뛰어넘는 밝기로 망원경 관측을 훼손한 2019년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바렌타인은 “그 일을 계기로, 우린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시트니코프 대표는 천문학계 비판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우리 광고는 해 뜨고 질 무렵 대도시 상공에서만 켜질 예정이니, 주로 어두운 산골에 설치된 망원경에는 방해가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황혼 시간대 위성은 태양 빛을 여전히 강하게 반사해 관측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반박한다. 게다가 이들 위성을 조종하는 강력 무선신호가 조금만 주파수 대역 밖으로 새어도 천문학에서 관측하려는 미약한 우주 신호를 압도해버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캐나다 리자이나대학의 사만다 로울러 박사는 “밤하늘 자체를 광고판으로 바꾸는 건 천문학에게 끔찍한 재앙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부디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라며 답답해했다.
우주 ‘교통체증’ 역시 걱정거리다. 현재 지구 저궤도엔 수천 기의 인공위성·로켓단이 있고, 여기에 초소형 파편 수백만 개가 초고속으로 떠다닌다. 광고 위성들이 형상을 유지하려면 정교한 궤도 제어를 해야 하는데, 작은 파편이라도 충돌하면 큰 파괴와 더 많은 파편이 생성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우주국(ESA)의 인공위성 충돌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얀 시민스키는 “잘못 충돌하면 단지 광고판에 구멍이 나는 게 아니라 엄청난 파편 구름을 만들 수 있다”면서, 각국 위성 운영사 간 충돌정보 공유 시스템이 여전히 이메일·전화 수준에 머무른다고 지적했다.
해당 기업들은 우주 광공해(light pollution)에 대한 국제법적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을 파고든다고 외계공간연구소(Outer Space Institute)의 에런 볼리 박사는 주장한다. 유엔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은 우주가 “자유롭게 탐사돼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예컨대 인공 광원으로 지구를 직접 비추는 행위는 분명한 회색지대라는 것이다. “현재 우주법을 개정하려면 수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 수 있기에,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규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리 박사는 설명한다. 결국 우주는 인류의 중요한 자원이고, 그 혜택을 망치지 않으려면 이용 방식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볼리 박사는 “우주는 무한히 넓을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영역은 유한하다”면서,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막을 것인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