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이상원 기자] 지난해 12월 멕시코 칸쿤 해변의 한 컨벤션 센터에서, 영국 포츠머스대학교 우주론학자 세샤드리 나다투르 박사가 일종의 ‘우주 성장 차트’를 극비리에 선보였다. 그 자리에는 수백 명의 천문학자·물리학자가 참석했는데, 그 내용을 듣고는 기존 우주 팽창 이론이 흔들릴 수 있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나다투르 박사는 “지난 25년간 우주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라고까지 평했다. 거의 30년 동안 천문학계는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며, 이 가속도는 시간에 따라 일정하다고 믿어 왔다. 이 과정을 이끄는 미지의 힘이 ‘암흑에너지(dark energy)’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암흑에너지 분광기(DESI)’ 연구진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이 암흑에너지가 반드시 상수처럼 고정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힌트가 포착됐다. 이후 새 자료를 통해 우주 팽창률이 ‘출렁거릴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DESI는 은하 좌표 데이터를 세 배 가까이 늘린 뒤 분석해, 지금까지 중 가장 강력한 ‘우주 팽창 변동’ 증거를 제시했다. 이는 우주 구성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여겨지는 암흑에너지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밝히는 결과다. 다만 아직 ‘물리학계가 말하는 확증 범위(5시그마)’에는 못 미치기에, 결론으로 단정하긴 이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표준 우주모형이 위기에 놓였다”고 평한다. 암흑에너지가 계속 변한다면, 우주의 진화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물리학의 기초를 다시 써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애덤 리스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는 “만약 이 결과가 옳다면, ‘우리가 아직 배울 게 남아 있다’는 믿음에 투자해 온 연구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약 100년 전, 우주가 ‘빅뱅(Big Bang)’을 통해 공간·시간과 함께 탄생했고, 지금도 그 잔해가 계속 팽창 중임이 과학계에 알려졌다. 1990년대 말, 과학자들은 팽창이 우주가 커질수록 점차 느려질 것으로 예상했다가, 막상 측정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고 점점 빨라지는 ‘가속 팽창’을 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초신성 관측을 토대로 애덤 리스와 다른 연구팀은 1998년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우주가 어째서 계속 가속 팽창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표준 우주론에서는 아인슈타인이 1917년 ‘우주상수’로 제시했던 항을 사용했다. 비록 그 물리적 기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른바 ‘진공 에너지’가 공간을 바깥으로 누르고 있다고 보는 아이디어다. 결국 ‘암흑에너지 대 중력(보이는 물질 + 차가운 암흑물질)의 줄다리기’라는 개념으로 우주 팽창 역사를 설명해 왔다. 이는 “미지의 95%가량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14억 년(140억 년) 가까운 우주 진화를 꽤 잘 묘사한다”고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여러 관측에서 불일치가 발견돼 “깨져 가는 이론”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중 하나가 우주 팽창 속도와 구조(‘덩어리짐’, clumpiness)에 대한 상충되는 측정값들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지 더욱 정밀하게 재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측정 결과는 암흑에너지가 일정하게 작용한다는 결론을 지지하는 듯했었다. 그런데 최근 초음파(소리)와 관련된 관측이 그 분위기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는 뜨겁고 밀도가 높은 자유 입자·광자 등으로 ‘마치 불길이 휩쓰는 호수’ 같았다. 압력파가 물결치듯 생성되다, 약 38만 년이 지난 뒤 원자 형성이 가능해졌고, 빛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었다(이는 우주배경복사로 현재까지 관측된다). 그리고 이 때 ‘호수의 물결’이 갑자기 얼어붙으면서 약 4억 9천만 광년 규모의 파동 패턴이 그대로 남았다. 이를 ‘중입자 음향진동(BAO)’이라 하며, 은하 형성의 ‘씨앗’으로 작용했다. 이 BAO 신호는 오늘날 천문학자들에게 하나의 ‘표준 거리척도’ 역할을 한다. DESI 관측에서 나온 새로운 결과가, 바로 이 BAO를 더 정밀히 측정해 암흑에너지의 변동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이야기다.
앞서 나다투르 박사는 “이번 발견은 금맥을 캔 것과 같다”며, 암흑에너지가 정말 시공간에 따라 변한다면, 우주론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더 많은 검증과 후속 관측으로 이 ‘금맥’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안겨줄지 지켜보고 있다. 만약 사실로 굳어진다면, 우주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시 써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