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전 세계적 가짜뉴스와 인공지능의 낭설이 난무하는 요즘, 어떤 정보를 접하든 비판적 시각은 필수다. 특히 “우주 전체가 사실 거대한 블랙홀 내부에 존재한다” 같은 전면적 주장은 더욱 세심한 검증이 필요하다. 언뜻 참신해 보여도, 뒷받침할 만한 관측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섣불리 믿기 어려운 법이다. 최근 캔자스주립대 컴퓨터과학자인 리오르 샤미르가 한 논문에서 “우주가 회전(自轉)하고 있으며, 그 가능성 중 하나가 거대 블랙홀 내부”라고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논문에 따르면,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광대한 외부 은하 관측(‘JADES’라 불리는 탐사) 자료 중 은하 표본을 살펴본 결과, 대략 3분의 2가 우리 은하(은하수)가 회전하는 방향(시계방향)과 같았고, 나머지 3분의 1가 반대(반시계방향)로 도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통상, 거시 규모(은하 간 거리를 훌쩍 넘는 우주적 규모)에서 우주는 방향성 없이 균질·등방이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별다른 이유 없이 한쪽 방향 회전 은하가 많다는 관측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샤미르는 “우리 우주가 거시적 수준에서 자전한다면, 그 자전이 은하 회전에 편향을 만들어내는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주가 회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우주가 커다란 블랙홀 내부’라는 견해를 거론한다. 블랙홀은 자연스럽게 회전하기에, 우주 전체가 그 내부라면 이 회전이 우주와 은하까지 특정 방향으로 돌게끔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일 정말 우주가 거대 블랙홀이거나, 혹은 적어도 자전 중이라면, 이는 우주론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암흑에너지나 ‘허블 텐션’(우주 팽창률 불일치) 등 여러 수수께끼가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 될 테니, 대중에게도 꽤 매력적인 소재가 될 법하다.
사실 우주가 회전하거나 블랙홀 내부라는 발상은 몇몇 물리학자가 수십 년 전부터 가볍게나마 제시해 왔다. 1949년, 쿠르트 괴델은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의 해 중 하나로 ‘회전 우주’ 해를 발견했고, 그 우주에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이론상 가능했다. 또, 별 붕괴로 실제 블랙홀이 생길 수 있음이 확인되자마자, “우리 우주가 블랙홀 내부일지 모른다”는 가설도 나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주 빅뱅의 특이점(무한히 밀집된 상태)과 블랙홀이 지닌 특이점이 형태상 유사하기 때문이다. 블랙홀 바깥 경계(사건의 지평선)와, 우주의 “관측 한계(우주론적 지평선)”도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럼에도 이 둘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빅뱅 특이점은 공간 상의 한 지점이 아니라, 시간의 시작점이다. 블랙홀 안에서는 모든 물질이 내부 특이점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우리 우주는 현재 팽창 중이라는 점도 다르다. 블랙홀 방정식을 변형한 ‘아인슈타인-카르탕 이론’ 같은 시도가 가능성을 열지만, 결국 가설 단계에 머무른 채 구체적 물리적 증거가 부족한 상태다.
그렇다면 이번 ‘우주 회전’ 논문이 정말 정황증거라도 내놓은 걸까? 아쉽게도, 우주론계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론적으론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고 본다. 샤미르가 도출한 결과는 고작 263개 은하의 회전방향 표본에 의존한다. 반면, 수십 년간 축적된 거대 관측(현재 약 1억 개 은하를 카메라에 담았고, 앞으로 2조 개 은하가 있을 것이라 추산)의 전체 흐름은 이런 ‘특정 방향 회전 우주’ 신호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종종 편향된 표본으로 인해 “회전 우주 증거”로 오인했던 사례가 있었지만, 후속 검증에서 인간이 만든 선정 효과(관측·분석 과정의 편향)임이 드러나곤 했다. “우주가 만약 회전한다면, 은하 회전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전체 구조 형성 과정에도 큰 파장을 준다. 심지어 괴델이 말했던 ‘타임머신’ 가능성도 열릴 것”이라며 일부 천문학자는 흥미로워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데이터는 그런 방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가 큰 블랙홀” 가설과 회전 우주 가설도 사실상 연결이 희박하고, 이를 지지하는 자료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단, “성급히 배제할 일은 아니다. 우주론에는 아직 미궁 속의 암흑물질·암흑에너지 같은 문제가 많다. 혹시 우리가 예상을 깬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실마리들이 실제 데이터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우주가 블랙홀 내부라는 증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가설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도발”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다. 아무리 파격적인 이론이라도, 결국 잘 확립된 관측과 실험적 검증 앞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과학계는 끊임없이 기존 모델을 재점검하고, 새 데이터를 대조해 ‘정설’마저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로는, “우리는 거대 블랙홀 속에서 회전 중”이라는 말은 단지 근거 희박한 상상에 그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