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컨택트’는 지구 바다에 사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며, 이들과 인간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심도 있게 그려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일종의 ‘외계 언어 전문가’ 역할을 맡아, 전쟁 위기로 치닫기 직전의 지구에서 이들 외계 존재와 교감을 시도한다. 언뜻 보면 허구에 불과해 보이지만, 실제로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우주 생명체와의 대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소위 ‘엑소언어학(xenolinguistics)’이라는 작은 학문 분야에 몸담고 있다.
엑소언어학이란 우리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혹은 존재 여부조차 불확실한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미리 가정하고 연구하는 영역이다. 물론 아직까지 외계 생명체가 실제로 확인된 적은 없으니, 이 분야가 정식 학문으로 자리 잡는 것은 쉽지 않다. 전 세계를 통틀어 20~30명 정도의 연구자만 참여하는 작은 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에는 ‘외계언어학 탐구: 언어의 본질과 외계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 모색’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열릴 정도로, 새로운 시선과 문제의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활발히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이번 워크숍에서 논의된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언어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외계 생명체와의 교신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그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소통하려 할지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 지구상의 인간과 동물 간의 의사소통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계 지능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언어’가 인간이 쓰는 말과 비슷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을지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이 분야를 꾸준히 주목해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메시징 외계 지능(METI) 인터내셔널’의 회장인 더글러스 바코치가 있다. METI 인터내셔널은 우주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지적 생명체에게 신호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단체다. 바코치는 2023년에 출간된 ‘엑소언어학: 외계 언어 과학을 향하여’라는 책의 공동 편집자로도 참여하며, 외계언어학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나 바코치가 처음부터 언어학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과거에는 “언어라는 것은 생물학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에 좌우되는, 지극히 ‘지구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즉, 전혀 다른 우주 환경에서 탄생한 생명체가 인간의 개념과 닮은 ‘언어’를 지닐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점차 연구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이러한 의문이 인간이 지닌 선입견을 깨뜨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바코치는 “외계 생명체가 정말 있는지조차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가치가 더 명료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철학자 매슈 브라운 역시 이러한 관점에 주목한다. 그는 미국 남부의 한 대학교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며, 이번 워크숍에 초청받아 엑소언어학에 대해 반년 가까이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브라운은 엑소언어학을 통해 “기존의 언어학, 심리학, 동물행동학 등 지구상의 여러 분야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우주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언어’를 상상하며 던지는 질문은, 그 자체로 학문적 경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천문학의 자매 분야인 ‘우주생물학(astrobiology)’이 ‘외계 생명체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도 지구 생물학과 지질학, 화학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온 것과 비슷한 원리라는 설명이다. 앵무새 연구자로 잘 알려진 아이린 페퍼버그 또한 엑소언어학의 잠재력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수십 년간 앵무새의 지적 능력과 언어적 소통 방식을 연구해왔는데, 이를 통해 지구상의 동물조차도 인간이 잘 모르는 다양한 소통 방식을 지닌다는 점을 부각한다. 개는 후각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돌고래와 박쥐는 인간이 들을 수 없는 높은 주파수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새는 자외선 영역을 통해 시각적 교감을 한다. 같은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물이 이 정도로 다양한 소통 구조를 지녔다면, 전혀 다른 행성에서 태어난 지능체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페퍼버그는 “우리는 외계가 우리에게 빛의 신호나 반복적인 패턴을 보낼 거라고 가정하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일지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엑소언어학에서 중요한 또 다른 물음은 외계 생명체가 소통을 ‘왜’ 하려는가이다. 예컨대 우리 인간은 정보를 주고받을 때도 있지만, 농담을 하고, 소설을 쓰고, 예술을 창작하며, 때로는 거짓말도 한다. 이는 꼭 진실만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닌, 감정적 유대나 사회적 행동을 위해서도 언어가 사용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바르셀로나의 연구기관에서 활동하는 엘린 매크리디는 “엑소언어학자들은 외계 언어가 ‘정보 전달’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연구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는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사실 전달이 아니라, 유희나 의식, 심지어 허풍과 같은 다채로운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외계로부터 오는 신호가 빛의 주파수나 전자기파 형태로 이뤄진다면, 우리가 그것을 ‘의도된 메시지’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설령 메시지처럼 보이더라도, 진실을 전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을 지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매크리디는 엑소언어학을 크게 두 분야로 나눈다. 하나는 패턴을 인식해 암호를 풀고, 그 결과가 언어인지 판단하는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문화인류학적인 시선으로, 우주 차원을 넘어선 ‘상호 이해’의 기반을 찾는 접근법이다.
결국 이 모든 질문은 지구에서도 매일 겪는 의사소통 문제와 닮아 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사고방식과 배경을 지녔고, 각 동물 종은 또 각기 다른 감각과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소통을 시도하며,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교감을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대화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엑소언어학자들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미지의 상대”라는 가상의 거울을 통해, 지구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마주할 수 있는지 성찰해보자고 제안한다.
분명 아직까지 외계 생명체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고, 그들과 직접 교신할 기회가 올지 여부도 미지수다. 하지만 언젠가 맞닥뜨릴지 모르는 우주적 만남을 상상하며, 지구인의 고정관념과 한계를 다시 되짚는 일. 바로 이것이 엑소언어학의 진정한 가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 가치를 위해, 오늘도 소수의 연구자들은 ‘말이 통할지 모르는 우주 이웃’을 꿈꾸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