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부풀고 있는지를 가리키는 허블 상수 값이 갈수록 엇갈리면서, 학계에서는 “허블 장력”을 넘어 “허블 위기”라는 표현까지 거론되고 있다. 서로 다른 두 방법이 내놓은 수치 차이가 해소되기는커녕, 최근 들어 오히려 더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허블 상수는 오늘날 우주의 팽창 속도를 1메가파섹(약 326만 광년)당 몇 ㎞/s로 표시한 값이다. 하나는 138억 년 전 빅뱅 직후 38만 년 무렵 남겨진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분석해 추정하는 방법이다. 유럽우주국의 플랑크 탐사선과 칠레 아타카마 코스몰로지 망원경(ACT)이 각각 지도화한 뒤 ΛCDM(람다 냉암물질) 우주론을 적용해 현재 시점으로 외삽하면, 두 연구 모두 ㎞/s/Mpc 값이 67∼68 범위에 수렴한다. 다른 한쪽은 우리 은하 근방에서 단계적으로 거리를 재는 이른바 ‘우주 거리사다리’ 기법이다. 세페이드 변광성·Ia형 초신성을 표준광도로 삼았던 SH0ES 연구진은 허블 상수를 약 73.5㎞/s/Mpc로 발표했다. 문제는 두 방식이 통계 오차를 감안해도 좁힐 수 없을 만큼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조 브렌트 털리 하와이대 교수팀은 초신성을 과감히 배제하고, 적색거성가지 꼭대기(TRGB) 별을 표준광도로 이용하는 또 다른 거리사다리를 제시했다. TRGB 별은 헬륨핵이 임계 질량에 도달해 일시에 점화될 때 고유 밝기가 일정해진다. 연구진은 세페이드를 거치지 않고도 이런 별까지의 거리를 정밀 교정하기 위해 정밀 시차가 확정된 은하 NGC 4258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그 결과, TRGB 사다리를 적용했을 때 산출된 허블 상수는 약 69.8㎞/s/Mpc 수준이었다. 이는 플랑크·ACT 결과보다는 높지만, SH0ES 값보다는 낮은, 말 그대로 ‘중간쯤’에 해당한다. 그러나 연구진이 통계·계통 오차를 모두 고려했을 때, 여전히 세 가지 값은 서로 겹치지 않는 영역에 머물러 허블 상수 불일치를 더욱 굳힌 셈이 됐다.
ΛCDM 모형은 전체 우주를 암흑에너지 68%, 냉암물질 27%, 일반 물질 5%로 설명한다. 지금까지는 관측 데이터 대부분이 이 모델을 뒷받침했지만, 허블 상수 불일치는 ΛCDM에서 무엇인가 빠졌거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만약 암흑에너지의 세기가 과거와 달리 변한다면, 초기 우주에서 오늘날까지의 팽창사를 잇는 방식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곧 가동될 유럽우주국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 미국 버라이슨 루빈 천문대 등 차세대 시설은 암흑물질 분포와 우주 팽창사를 정밀 추적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새 데이터가 나오면 허블 상수 계산도 한층 정교해져, 장기적으로는 어느 방법이 틀렸는지 혹은 현행 우주론이 불완전한지 가려낼 단서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당장으로서는 플랑크·ACT·SH0ES·TRGB 네 가지 결과 모두 저마다의 오차막대 안에서 확신을 굽히지 않는다. 허블 상수의 값이 67인지 74인지 그 사이 어딘지 결론이 날 때까지, 우주론의 무게추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 상태에 걸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