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나타난 거대 원, 정체는 무엇일까
우주에 나타난 거대 원, 정체는 무엇일까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천문학자들이 전파 망원경 관측으로만 포착되는 수수께끼의 거대 구조물을 잇달아 발견하며 학계가 들썩이고 있다. ‘이상 라디오 원(ORC·Odd Radio Circle)’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지름이 수백만 광년에 이르지만 전파를 제외한 파장대에서는 보이지 않아 정확한 기원이 무엇인지 논쟁이 뜨겁다. 호주 서부 사막지대에 건설된 ASKAP 전파망원경은 2019년 시범 탐사에서 직경 수도가 넘는 둥근 고리 네 개를 처음 확인했다. 가장 먼저 보고된 ORC‑1 중심에는 약 50억 광년 거리의 타원은하가 자리해, 초대질량 블랙홀에서 뿜어져 나온 초고속 분출이 주변 성간 가스를 부풀렸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은하 중심 블랙홀이 방출한 물질 제트가 수백만 광년 규모의 거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발견된 ORC들은 양상이 제각각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ORC는 거의 맞붙어 있으면서도 하나는 밝은 고리, 다른 하나는 희미한 원반 형태를 띠었다. 독일·프랑스 공동 연구진이 보고한 ‘클로버리프’ ORC에서는 X선이 검출돼 소은하단 간 충돌로 가열된 뜨거운 가스가 원형 충격파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경우 거리는 6억 광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더 흥미로운 사례도 있다. 2022년 보고된 한 ORC는 중심 은하가 없고, 거대마젤란은근처 하늘에서만 얇은 고리 형태 전파로 확인됐다. 거리가 불과 16만 광년이라면 지름은 150광년 남짓에 불과해 초신성 잔해일 가능성이 크다. 별이 폭발해 날려 보낸 물질이 우주 공간에서 커다란 전파 링으로 남았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ORC라는 ‘우산’ 아래에는 초대질량 블랙홀 활동, 은하단 충돌, 초신성 폭발 등 원인이 전혀 다른 복수의 천체가 한데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천문학에서 외형이 비슷한 현상이 서로 다른 근원으로 설명된 사례는 흔하다. 예컨대 감마선폭발도 거대별 붕괴와 중성자별 합병이라는 두 길이 확인된 바 있다.

ASKAP 팀과 국제 공동 연구진은 관측 시간을 늘려 ORC 후보를 계속 찾아내고 있으며, 남아프리카·캐나다 등지의 차세대 전파망원경까지 가세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관측 표본이 늘어나면 크기·밝기·거리별 계통 분류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ORC라는 새로운 퍼즐 조각이 우주 대형 구조와 은하 진화 연구에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ORC는 아직까지 ‘설명’이 아닌 ‘묘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미지의 원을 하나씩 해독해 가는 과정에서 초대질량 블랙홀의 작동 원리, 은하단 충돌의 흔적, 초신성 잔해의 확산 속도 등 우주 물리학의 빈칸이 채워질 것으로 과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