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엔 정말 ‘완전한 진공’이 없었다…성운과 초신성 잔해가 만드는 우주 속 음파
우주엔 정말 ‘완전한 진공’이 없었다…성운과 초신성 잔해가 만드는 우주 속 음파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우주에선 당신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영화 에이리언의 유명한 말은 우주 공간이 텅 빈 진공이라는 통념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보면 우주는 완벽한 공허가 아니다. 곳곳에 희박하나마 물질이 존재하며, 특정 환경에서는 실제로 ‘소리’가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의 계산으로 확인된다.

◇ 실험실 진공보다 훨씬 희박한 우주 공간

소리가 전해지려면 분자나 원자 같은 매개 물질이 필요하다. 지구 대기의 분자 밀도는 1㎤당 수십 경(10^19)개에 이르지만, 실험실의 고급 진공 챔버조차 1㎤당 1조(10^12)개 수준으로 밀도를 낮추는 데 그친다. 태양과 행성 사이의 공간은 이보다도 얇아 1㎤당 수십 개 입자뿐이며, 별과 별 사이인 성간 공간은 1㎥(100만 ㎤) 안에 약 100개가 존재할 정도다. 은하와 은하 사이, 즉 우주 ‘심해’는 1㎥에 고작 1개의 입자가 떠다닌다. 이런 환경에선 사람이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입자 간 충돌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지 않아 음파가 사실상 전달되지 않는다.

◇ 밀도 차가 만드는 우주 음파의 ‘활주로’

그러나 모든 우주 공간이 동등하게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리온 성운 같은 밝은 방사성 가스 구름은 1㎤당 1만 개의 입자를 지닌다. 별 형성이 한창인 분자운의 밀도는 100만 개, 거대 분자운의 핵심부는 10억 개까지 치솟는다. 그래도 지구 대기보다는 수백만 분의 1 수준이지만, 거대한 부피가 합쳐지면 음압이 충분히 형성돼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별이 폭발해 초신성이 되면 엄청난 속도로 물질을 방출하며 주변 성간 물질과 충돌한다. 이때 형성되는 충격파는 음파의 일종으로, 성운 내부에서 시속 수만 ㎞(초속 10㎞ 수준)로 전파된다. 지구 대기에서 소리 속도(초속 340m)보다 수십 배 빠르다. 충격파는 주변 가스를 압축·가열해 초신성 잔해에 보이는 실 같은 구조와 리본 모양을 만든다.

◇ 행성 출생에도 ‘소리’가 필요했다

소리는 우주 진화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분자운 속 고밀도 가스·먼지 덩어리가 자체 중력으로 붕괴하면 원시별 주변에 원반이 형성된다. 이 원반의 평균 밀도는 1㎤당 10조~100조 개로 실험실 진공보다 높지만 공기보다는 훨씬 희박하다. 이 정도 밀도면 음파가 물질을 끈적하게 만들고 난류를 일으켜 미세 입자가 서로 뭉쳐 행성 씨앗이 된다. 음파가 없었다면 입자들은 별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결코 행성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 ‘우주에선 아무도 비명을 듣지 못한다’는 진실과 오해

결국 우주는 대부분 고요하지만, 조건이 맞는 곳에서는 분명히 ‘소리’가 존재한다. 성운의 미묘한 파동부터 초신성의 굉음, 그리고 원시 행성계 원반 속 음파까지—희박한 입자들이 만들어 내는 진동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다. 완전한 공허라면 생명도, 행성도, 그리고 소리를 논하는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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