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망원경이 들은 우주 중력파 배경, 정체 밝히기 경쟁 가열
전 세계 망원경이 들은 우주 중력파 배경, 정체 밝히기 경쟁 가열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지난해 6월, 국제 연구진은 펄사(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 신호를 정밀 분석해 우주 곳곳을 가로지르는 저주파 중력파 ‘잔향’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 예측한 뒤 2015년 미국 라이고 관측소가 고주파 중력파를 처음 검출하며 실제 존재가 확인됐지만, 이번에는 주기가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는 ‘저주파’ 영역이 포착된 것이다. 학계는 이를 “중력파 천문학 2막의 개막”으로 평가한다.

미국·유럽·호주·인도 등 6개 지역 연구진은 각각 거대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펄사 100여 개를 10~20년에 걸쳐 관측했다. 펄사 신호가 지구에 도달하는 나노초 단위의 ‘오차’를 지도처럼 겹쳐 보면, 지구와 펄사 사이 공간이 중력파에 의해 미세하게 늘었다 줄었다 한 흔적이 드러난다. 이를 ‘펄사 타이밍 어레이(PTA)’라 부르며, 현재는 모든 자료를 통합한 국제 펄사 타이밍 어레이(IPTA) 구축이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통합 데이터가 공개되면 감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질 것”이라며 추가 성과를 예고했다.

관측된 저주파 중력파의 주된 원천으로는 두 은하 중심의 초거대 블랙홀이 서로를 공전하며 점차 합쳐지는 과정이 거론된다. 실제로 블랙홀 쌍이 머무는 하늘 방향이 ‘핫스폿’처럼 보일 가능성도 제시된다. 그러나 아직 공간 분포가 고르게 나타나는 탓에 ‘우주 초기 상전이’나 ‘코스믹 스트링’ 같은 신물리 현상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만일 앞으로 10년 안에 특정 천체가 분리되지 않는다면, 기존 이론을 뛰어넘는 물리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중국 FAST의 변수, 그러나 SKA 등 차세대 망원경도 가세

향후 관측 경쟁의 관건은 망원경 성능이다. 중국 구이저우성의 500m 전파망원경 FAST는 세계에서 가장 민감해, 불과 3년 만에 NANOGrav(미국) 팀이 15년 걸려 얻은 것과 비슷한 신호를 확보했다. 다만 중국 측이 IPTA 데이터 공유 협정에 아직 서명하지 않아 공동 분석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남아공의 미어캣(MeerKAT), 미국 네바다주에 건설 예정인 DSA-2000, 2028년 일부 가동을 목표로 하는 국제 거대 전파망원경 SKA 등도 연이어 합류해 FAST 독주 체제를 흔들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펄사 개수를 늘리고 관측 기간을 연장해 중력파 지도를 점차 선명하게 만들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초거대 블랙홀 쌍의 질량, 거리, 주변 은하 환경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은하 진화 연구에도 큰 전기가 마련된다. 동시에 유럽우주국(ESA)의 우주 레이저 간섭계 LISA, 지상 고주파 중력파 관측소 라이고·비르고 업그레이드 등 여러 파장이 서로 보완하며 ‘멀티 밴드’ 중력파 관측 시대를 예고한다. 밴더빌트대 스티븐 테일러 교수(NANOGrav 의장)는 “지금은 금을 캐러 서부로 달려가던 시절과 비슷하다”며 “각 지역 망원경이 모은 데이터가 합쳐질수록 우주를 바라보는 창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저주파 중력파 배경의 정체가 초거대 블랙홀 합체로 귀결될지, 아니면 새로운 우주 물리의 신호일지, 인류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느린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