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에너지, 변덕스러운 힘이었나…DESI 관측 결과로 흔들리는 우주론
암흑에너지, 변덕스러운 힘이었나…DESI 관측 결과로 흔들리는 우주론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2024년, 미국 애리조나 키트피크 국립천문대에서 가동 중인 ‘암흑 에너지 분광 장비(DESI)’의 1차 분석 결과가 공개되면서 천문학계가 충격에 빠졌다.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정체불명의 힘, 암흑에너지가 시간이 흐르며 약해지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된 것이다. 암흑에너지는 지금까지 일정한 값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표준 우주론(ΛCDM)을 떠받쳐 왔다. 그러나 DESI의 측정치는 이 전제를 정면으로 흔들었다.

올해 3월 발표된 DESI 2차 분석은 약 2천만 개의 은하를 추가로 조사한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다. 첫 결과가 통계적 착시일 가능성을 의심했던 학계는, 이번에는 통계적 신뢰도가 크게 높아진 ‘람다 감소’ 현상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DESI 공동대변인 나탈리 팔랑크-델라브루이유(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처음에는 표준모형과 일치해 안도했지만, 미세한 어긋남이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다니엘 그린 교수는 DESI팀이 발표 직후 내놓은 ‘암흑에너지 약화’ 해석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증하지 않았다”며, 암흑물질이 서서히 붕괴하면서 유사한 관측 결과를 낳는 대안 모델을 제시했다. 다만 암흑물질 붕괴설 또한 아직 결함이 많아 본격적인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표준 우주론은 ‘차가운 암흑물질(CDM)’과 일정한 암흑에너지(람다)로 우주의 대규모 구조를 설명해 왔다. DESI는 2021년부터 110억 광년에 걸친 은하의 위치·운동을 정밀 측정하며, 우주 초기에 형성된 ‘음향 진동 흔적(BAO)’과 초신성 관측, 우주배경복사(CMB) 자료를 종합해 우주의 성장 역사를 재구성해 왔다. 그 과정에서 λ 값이 미세하게 하향 조정돼야 한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힘을 얻었다.

DESI 데이터는 1998년 암흑에너지 발견 직후 제안됐다가 접어 둔 ‘동적 암흑에너지’ 모델을 부활시켰다. 시카고대 조슈아 프리먼 교수는 “데이터 정밀도가 높아 덕분에 만약 새로운 입자가 존재한다면 질량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암흑에너지 변화를 설명할 ‘가상의 입자’ 질량은 전자보다 더 가벼운 10⁻³³전자볼트 수준으로 예측된다. 동적 암흑에너지 모델이 옳다면, 우주배경복사·중력파·대규모 구조 형성과 같은 영역에서 기존 물리 법칙과 충돌하지 않는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DESI는 2028년까지 관측을 이어갈 예정이며, 유럽우주국의 ‘유클리드’ 위성과 미항공우주국(NASA)의 ‘로마 우주망원경’도 올해 이후 본격 가동에 들어가 암흑에너지 논쟁에 결정적 데이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학계는 “우주론의 핵심 상수가 가변적이라면 이는 지난 세기 뉴턴 역학·일반상대성이론에 맞먹는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숨 가쁜 관측·이론 경쟁을 예고했다. DESI의 다음 데이터 공개는 2026년으로 예정돼 있다. 어느 쪽의 해석이 옳든, 우주를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가 머지않아 한층 또렷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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