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실 한 가닥이 스카프부터 방탄복까지 변신하는 뜨개질의 세계에 물리학이 접목됐다. 뜨개 기법마다 발생하는 장력이 직물을 돌돌 말아 올리거나 3차원 형상으로 변형시키지만, 최종 형태를 미리 예측하는 일은 수작업이든 산업용 편직기든 여전히 난제였다. 미국 드렉셀대 연구진은 이러한 복잡성을 해석할 수 있는 물리·수학 모델을 개발해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일정한 패턴으로 직물을 짜면 각각의 코가 고유한 곡률과 장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매 코의 실제 모양과 늘어남을 모두 계산하면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코가 직물에 부여하는 ‘굽힘 경향’만 파악해도 전체 거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얇은 판이나 조직의 변형을 설명하는 뵙플–폰카르만 방정식에 뜨개 코 데이터를 대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연구진은 곡선·뾰족·얼굴 형태 등 복잡한 패턴을 직접 뜨개로 구현한 뒤 역으로 기하 정보를 추출해 모델을 검증했다. 가상 환경에서 직물의 최종 형태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 의료용 웨어러블 센서처럼 신체 곡면에 맞춤형으로 밀착되는 스마트 섬유 개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스탠퍼드대 코시마 뒤 파스키에 기계공학 교수는 “저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뜨개질이 고기능 웨어러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평했다. 그는 향후 원사 종류·두께 변화에 따른 모델 정확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드렉셀대 기능성 섬유센터장 진비에브 디옹 교수는 “지금까지 뜨개 디자인은 시행착오에 의존했지만, 이 모델로 가상실험이 가능해졌다”며 “맞춤형 직물 시대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