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 금속통으로 ‘블랙홀 폭탄’ 원리 실현… 실험실서 확인된 초방사 현상
회전 금속통으로 ‘블랙홀 폭탄’ 원리 실현… 실험실서 확인된 초방사 현상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블랙홀이 방출하는 회전 에너지를 거울로 가둬 폭발적 증폭을 일으킨다는 ‘블랙홀 폭탄’ 개념이 실험실에서 재현됐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헨드릭 울브리히트 교수팀은 회전하는 금속 실린더를 이용해 블랙홀의 초방사(superradiance) 효과를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1970년대 물리학자 야코프 젤도비치가 예측한 초방사는 회전 천체가 전자기파를 흡수하는 대신 오히려 증폭해 방출하는 현상이다. 이때 회전체를 거울로 둘러싸면 에너지가 내부에서 반복 증폭돼 ‘블랙홀 폭탄’처럼 폭발적 불안정 상태에 이른다. 그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이 현상을 연구진은 금속통·유도전동기 코일·간단한 회로 부품으로 구성된 장치로 구현했다.

연구팀은 코일이 만든 자기장을 통해 통 내부에 전자기파를 유도하고, 동시에 코일과 콘덴서가 거울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다. 실린더 회전 속도가 임계치에 도달하자 회로 내 전압이 급격히 상승, 초방사의 특징인 지수적 증폭 곡선을 그렸다. 이는 젤도비치의 예측과 일치한다. 다만 실험 장치가 내뿜은 에너지는 수 밀리줄 수준으로, 실제 폭발 위험은 없다. 연구진은 또 자기장을 제거한 상태에서도 실린더가 자체 회전에너지로 ‘무(無)에서’ 전자기파를 생성·증폭시키는 모습을 관측했다. 이는 열적 잡음 위에 숨어 있던 진공 요동이 증폭된 결과로, 초방사가 진공에서도 가능함을 시사한다.

덴마크 닐스보어연구소 비토르 카르도수 교수는 “실험이 블랙홀의 회전 에너지 추출 메커니즘을 실제로 검증했다”며 “초경량 입자(암흑물질 후보) 탐색 등 블랙홀 물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울브리히트 교수팀은 앞으로 진공 요동만을 순수 증폭하는 ‘양자 버전’ 실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성공한다면 “진공 에너지 활용 가능성까지 가늠할 수 있는 물리학의 중대 전기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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