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스쳐 지나감’에서도 중력파가… 끈이론 수학이 우주 관측 모형 바꾼다
블랙홀 ‘스쳐 지나감’에서도 중력파가… 끈이론 수학이 우주 관측 모형 바꾼다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10년 전 최초 중력파를 포착한 이후, 과학자들은 블랙홀·중성자별 충돌 신호를 수백 건 수집했다. 그런데 최근 국제 연구진이 “충돌 직전의 스쳐 지나가는 블랙홀도 강력한 중력파를 낸다”는 분석을 내놓아 관심이 쏠린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예측에 끈이론의 핵심 수학 구조 ‘칼라비-야우 다중접힘(3차원 복합체)’이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훔볼트대 얀 플레프카 교수팀은 블랙홀 두 개가 근접 통과하며 서로를 휘어지게 하는 산란(scattering) 과정을 입자 충돌처럼 모델링했다. 연구진은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을 다섯 단계(5차 포스트-민코프스키)에 걸쳐 근사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수학 함수가 6차원 칼라비-야우 기하 구조와 동일함을 확인했다. 이는 “끈이론의 추상 수학이 실제 관측 가능 물리량에 직접 등장한 첫 사례”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고차원 기하를 적용한 새 근사식은 슈퍼컴퓨터 수치 시뮬레이션과 비교했을 때, 블랙홀이 멀리서 비껴가는 상황에서는 거의 일치했다. 근접 통과에서는 오차가 커지지만, 연구진은 “향후 회전·병합 단계까지 복합 모형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2030년대 중반 가동될 차세대 중력파 관측소(미국 코스믹 익스플로러, 유럽 아인슈타인 망원경)의 ‘웨이브폼 템플릿’ 정교화에 핵심 역할을 할 전망이다.

영국 버밍엄대 LIGO 과학자 게레인트 프래튼 교수는 “영웅적인 계산”이라며 “다음 세대 신호 모형의 틀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구가 아직 스핀이 없는 블랙홀, 영원히 재회하지 않는 ‘비결합 산란’만 다뤘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실제 우주에서는 대부분의 블랙홀이 회전하며, 산란 후 시간이 지나 결국 합병에 이른다.

그럼에도 물리학계는 이번 연구를 “거대 천체를 미시 입자처럼 다루는 새로운 장”으로 본다. 플레프카 교수는 “끈이론 속에만 존재하던 복잡 함수가 중력파 에너지 계산에 등장했다. 머지않아 실제 관측으로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이론이 아닌 ‘실험 가능한 물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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