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미국 뉴멕시코주 산 아구스틴 평원에 자리 잡은 ‘초대형 전파망원경(VLA)’은 40년 넘게 우주 전파 관측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해상도와 감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차세대 초대형 전파망원경(ngVLA·next-generation Very Large Array)’으로 세대교체를 준비 중이다. 연방기금 지원 기관인 미국 국립전파천문대(NRAO)는 최근 현장에서 첫 시제품 안테나를 공개하고, 2030년대 초 가동을 목표로 한 대형 프로젝트의 본격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시제품은 지름 18m로서 기존 VLA(25m)보다 컴팩트하지만 전파 수집 효율은 대폭 향상됐다. NRAO는 동일 규격 안테나 263기를 미국 남서부 일대에 Y자 형태로 분산 설치해, 최대 baselines(안테나 간 거리) 900km 규모의 가상 초대형 망원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완성되면 해상도는 현 VLA의 10배 이상, 감도는 20배 이상 향상돼 행성 형성 원반의 틈새 구조부터 은하 중심 블랙홀 제트까지 정밀 관측이 가능하다.
2020년대 미국 천문학계 ‘10년 로드맵(Decadal Survey)’에서 ngVLA는 별·행성 탄생, 유기분자 탐색, 은하 진화 연구를 위한 최우선 지상 관측 시설로 선정됐다. 1000억㎞ 떨어진 휴대전화 전파도 잡아낼 정도의 민감도를 실현하면, 태양계 외곽 오르트 구름 속 혜성 핵의 물·유기물 분포도 파악할 수 있다. 도전 과제는 예산이다. NRAO는 2029년 착공, 2033년 1차 가동을 목표로 총 25억 달러(약 3조4천억 원) 규모 예산을 NSF(미 과학재단)에 요청했지만, 최근 NSF 연구비 삭감과 지도부 공백으로 전망이 흐릿하다. 반면 민간 자금으로 속도를 내는 소형 안테나 2000기 규모의 ‘딥시놉틱어레이(DSA-2000)’ 프로젝트가 가시화되면서, 양대 전파망원경 간 우선순위 경쟁도 불가피하다.
NRAO는 시제품 공개 행사에 지역·연방 정치인을 초청해 “실물 안테나가 프로젝트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토니 비즐리 NRAO 소장은 “ngVLA는 별이 태어나는 현장을 직접 촬영하고, 미지의 유기분자를 찾아 생명 기원을 밝힐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했다. 미국 전파천문학의 미래가 걸린 ngVLA. 사막에 세워진 첫 안테나는 과학계의 열망을 담아 우뚝 섰지만, 하늘을 향해 돌려질 수백 기의 ‘거울’이 실제로 완성될지는 향후 예산 전쟁의 향방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