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인공지능 열풍이 지구를 넘어 우주 탐사까지 뒤흔들면서 외계 지적생명(SETI) 탐색 방식도 대전환을 맞고 있다. 최근 천문·AI 학계에서는 음악·수학 인사말 대신 대형언어모델(LLM) 자체를 전송해 외계 문명과 ‘간접 대화’를 시도하자는 구상이 제기됐다. 구글 ‘트랜스포머’ 구조(2017) 이후 폭발적으로 발전한 LLM은 인터넷 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 언어를 유창히 구사한다. 연구팀은 “라디오·레이저 신호 안에 압축된 LLM을 담아 보내면, 수신한 외계 문명이 모델과 질의응답을 통해 인류 언어·역사·과학을 자율 학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왕복 수십~수천 년 걸리는 거리 지연을 뛰어넘어 쌍방향 교류가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메타 ‘Llama-3-70B’ 같은 오픈소스 모델은 원본이 130GB 수준이다. 양자화(정밀도 축소) 기술을 쓰면 수 GB로 줄일 수 있어 달이나 화성용 중계(라디오 100 Mbps, 레이저 622 Mbps)로는 수 분~수 시간 안에 전송 가능하다. 그러나 알파센타우리(4.3광년) 등 항성계로 보내려면 현재 기술로 초당 100비트 안팎 속도에 불과해 수백 년이 걸린다. 연구진은 10 kW급 레이저 수천 개를 위상 배열해 100 GW급 빔을 만들거나, 태양을 ‘중력 렌즈’로 활용해 광대역 통신망을 구축하는 방안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모든 행성 탐사선에 소형 컴퓨터와 LLM, 사용 설명서를 실어 보내는 ‘디지털 타임캡슐’ 전략도 제시된다. 1977년 보이저 호에 실린 아날로그 골든 레코드의 현대적 확장판이다. 먼 미래 누군가가 탐사선을 발견해 LLM을 재구성하면, 인류 문명이 존재했음을 알리고 후대·외계 지성에 지식과 문화를 전수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LLM이 담은 정보가 적대적 외계 문명에 악용될 경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또 모델 편향·윤리 문제, 인류 대표성 확보를 위한 데이터 선정 기준 등 사회‧철학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학계는 AI·우주통신 융합이 SETI·METI(외계 문명 메시지 발신)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국제 SETI 연구소 관계자는 “AI를 ‘우주 편지’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상상력이지만, 곧 기술적 실현성을 따져볼 단계”라며 “인류가 우주에 남길 다음 메시지를 어떤 형태로 설계할지 전 지구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