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고정된 현실이 없다”… 양자혁명이 바꾸는 과학·기술 판도
“우주에는 고정된 현실이 없다”… 양자혁명이 바꾸는 과학·기술 판도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현대 물리학의 상식을 뒤흔든 실험에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우주는 ‘국소적(real)’이지 않다”는 사실, 즉 입자는 측정되기 전까지 확정된 성질이 없다는 점을 실증한 세 명의 과학자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양자 얽힘이 수백 킬로미터 거리에서도 입자들을 즉각적으로 연결한다는 이 결과는 1935년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EPR 역설’을 정면 돌파하며 양자역학의 기묘함을 현실 세계로 끌어냈다.

최근 연구진은 맨눈으로 식별 가능한 진동막·다이아몬드 결함 등을 얽히게 하는 데 성공했다. 구글·IBM·엔비디아 등 빅테크는 수백~수천 개 큐비트를 제어하는 양자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고전 컴퓨터가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한 ‘양자우위’ 사례는 없지만, 암호 해독·신약 설계·물류 최적화 시장에서 잠재력이 막대하다는 평가다. 양자역학은 시간 흐름조차 일방향이 아님을 시사한다. 일부 이론은 과거와 미래가 얽혀 결정을 공유한다고 본다. 또 중력마저 양자 규칙을 따를 수 있다는 ‘양자중력’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여러 우주가 공존한다는 다중우주 가설, 힉스장 불안정이 촉발할 ‘진공 붕괴’ 시나리오 등도 정식 학술 담론으로 검토되고 있다.

‘스트레인지 메탈’이라 불리는 신소재에서는 전자들이 전체가 하나로 얽힌 상태로 움직인다. 사르데냐 깊은 광산에는 ‘진공의 질량’을 재려는 실험 장치가 가동 중이다. 양자장론이 예언한 가상의 입자를 찾기 위해서다. 레이저로 만든 광격자(lattice)는 고체 결정을 모사하며, 전자 이동·고온 초전도 현상 규명에 활용된다. 하이젠베르크와 벨은 “관측을 통해 현실이 정의된다”고 봤다. 인간의 인식 행위가 양자 세계에 필연적으로 개입한다는 뜻이다. 거시적으로는 우주론, 미시적으로는 뇌·의식 연구까지 영향을 미치며, ‘자유의지’ 논쟁으로도 번진다.

양자기술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양자내성’ 암호 표준화 작업이 급하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오류율을 줄이는 ‘에러 보정’이 상용화의 열쇠로 꼽힌다. 무엇보다 기초 연구 투자와 윤리적 통제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입자에 고정된 속성도, 시간의 단선적 흐름도, 심지어 단일 우주라는 개념조차 양자역학 앞에서는 유동적이다. 인류는 이제 관측자이자 설계자로서, ‘양자 시대’라는 낯선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