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지난 2012년, 미항공우주국(NASA)은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향하는 보급선 안에 조용히 ‘영안실’을 실었다. 공식 명칭은 ‘인체 유해 봉합‧수송 장치(HRCU)’. 얼핏 보면 냉동 샘플 가방 같지만, 우주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시신을 보관·귀환하기 위한 특수 용기다. 홍보 자료도, 보도자료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우주에서도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NASA의 인식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였다.
현재까지 자연사한 우주인은 없지만, ISS 장기 체류 임무가 늘고 우주인의 평균 연령이 50세 안팎으로 올라가면서 돌연사 가능성은 현실적 위험이 됐다. NASA는 최근 신규 우주인 선발 주기를 늘려 젊은 대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후 처리 매뉴얼과 장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HRCU는 미군 전장 시신백을 개량한 것으로 내부에 흡습·탈취층, 역방향 지퍼, 좌석 고정용 스트랩이 달렸다. 2019년 미국 샘휴스턴주립대의 지상 부패 실험에선 40일 이상 체액 누출 없이 보관이 가능했다. ISS에서 사망이 발생하면 동료 대원들은 ‘임시 검시 프로토콜’에 따라 시신 사진·혈액·안구액 등을 채취한 뒤 HRCU에 안치해 무중력 구획에 고정한다. 귀환 뒤 지상에서 본격 부검을 진행, 사인을 규명해 향후 임무 안전을 개선한다.
우주 유영이나 달·화성 기지에서 사고사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NASA는 특수 ‘우주 수의(shroud)’도 마련했다. 회수된 시신을 감싸 내부 오염을 막고, 외부 전달 영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유가족과 지구 대중을 배려한 ‘존엄 확보 장치’인 셈이다.
ISS는 국적국이 관할하지만, 달·화성 거주지나 민간 우주선에서의 사망은 관할권과 범죄수사 절차가 모호하다. 1967년 체결된 ‘우주조약’에도 관련 조항이 없다. NASA와 50여 개국이 서명한 ‘아르테미스 협정’이 기본 틀을 제시했지만, 살인·과실치사 같은 형사 문제나, 시신 영구 매장·우주 방류 등 구체적 사후 처리 규정은 향후 국제 합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향후 달 장기체류나 화성 탐사에서 첫 자연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포괄적 매뉴얼과 국제 공조 체계를 갖춰야 ‘우주 비극’을 ‘학습’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사 관계자는 “우주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며 “죽음에 대한 준비가 곧 성숙한 우주 진출의 척도”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