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 멈춰 선 자리에서 피어나는 회복 [박수빈 칼럼]
소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 멈춰 선 자리에서 피어나는 회복 [박수빈 칼럼]

[미디어파인=박수빈의 책 그리고 삶]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타인의 삶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경험을 복기하는 일. 소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를 읽고 내가 든 생각이다. 주인공 이윤은 수다스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듣는 일이 먼저인 사람이다. 말 없는 눈빛과 작은 한숨, 오래 눌러두었던 말들을 조심스레 꺼내는 손님들의 기척에 반응하며, 자신도 잊고 있던 마음의 방향을 조금씩 되찾는다. 소설은 관계란 결국 '반응하는 능력'이라는 점을 다시 묻는다. 그리고 그 반응은 경청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도 듣지 못하는가. 아니, 듣기를 거부하였는가. 『두잇커피』는 소리 없는 진심과 조용한 감정들이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도와 시간 속에서 전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멈추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단정하지 않고, 대신 응시하고 기다리는 태도다. 그렇게 이윤은 자신의 상처를, 타인의 진심을, 그리고 관계의 가능성을 커피 향처럼 진하게 우려낸다. 이 소설은 ‘말의 힘’보다 더 근본적인 ‘태도의 힘’을 보여주는 드문 서사이며, 침묵의 언어로 관계의 윤리를 탐색하는 성찰의 장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윤은 카페에 머물러야만 하는 인물이다. 사진을 전공했지만, '어디든 떠날 수 있어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택했고, 그곳에 머무른다. 반면 곽현주 작가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자유롭게 떠날 수는 없지만, 그녀 역시 한 자리에 머물며 타인의 삶을 깊이 듣는다. 이들이 ‘움직이지 않음’의 조건 속에서 보여주는 건 단순한 체념이나 정지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각과 감정이 고도로 정제되는 능동적 상태에 가깝다.

이윤은 커피를 내리는 손보다, 커피를 건네는 순간의 기척에 더 민감하다. 곽현주 작가 또한 문장 안에서 말보다 감각과 결에 집중한다. 이윤은 카페라는 공간을 단지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수많은 삶이 교차하는 ‘관계의 실험실’로 만들어낸다. 그는 커피 주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소한 사연들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삶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비추어본다. 작가는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멈춰 있는 자리’가 오히려 가장 넓은 세계로 연결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두잇커피』을 구성하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는 인물의 말보다 그 말이 발화되기 전의 감정, 그 말이 끝난 뒤의 침묵,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결을 따라간다. “단풍잎과 아메리카노”에서는 ‘괜찮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가혹한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괜찮다’는 말은 듣는 이를 안심시키기보다, 오히려 더 깊이 상처 입히는 무의식적 폭력일 수 있다. 이윤은 바로 그런 순간에서 말을 멈추고, 상대를 살핀다. 말보다 느린 방식으로 도달하는 회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때로는 풍경이 말보다 먼저 이윤을 사로잡는다. 사진을 포기했던 인물이 다시 감각을 회복하게 되는 순간, 그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풍경 속에 남긴 자국과 기척에 반응한다. 이는 곧 ‘응시의 윤리’이며, ‘감정의 시차’를 허용하는 느림의 철학이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반응하려 하고, 너무 쉽게 요약해버린다. 『두잇커피』는 그러한 반응의 자동화에 저항하며, 감정을 온전히 소화하고 체화하는 윤리적 독해를 요청한다.

이 책의 주된 미덕은 ‘회복은 느림 속에서 가능하다’는 명제를 문학적으로 실현한다는 데 있다. 작가는 모든 에피소드를 느리게 배치한다. ‘루비쿠키’가 ‘르뱅쿠키’라는 오해로부터 풀리는 과정처럼, 작은 오해를 풀어가는 시간 자체가 관계의 온도를 만든다. ‘12시55분 레모네이드 걸’에서 주인공은 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손님을 통해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기척이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임을 깨닫는다. 곽현주 작가는 이러한 서사를 통해 ‘말로 전달되지 않는 진심의 방식’을 독자에게 제안한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말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회복과 위로를 탐색한다. 그것은 결국 ‘말을 하지 않는 기술’, ‘빠르게 공감하지 않는 윤리’, ‘멈춰서서 기다리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은 ‘듣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이윤과 곽현주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말하지 않고도 충분히 말하는 사람들. 멈춰 있는 채로 가장 멀리 도달하는 사람들이다.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박수빈 작가]
콘텐츠 기획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뉴미디어, SNS 플랫폼 등에서 고객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웹진·잡지사, 홍보기획사, 언론사, 대학연구원 등을 거치며 다양한 업무를 맡아 담당해 왔다. 대학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며 문화·예술·인문 분야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논문으로는 <수용자의 정치성향과 언론사의 이념성 지각이 적대적 매체지각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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