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유럽우주국(ESA)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공동 운영 중인 태양 탐사선 ‘솔라 오비터(Solar Orbiter)’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의 극지 이미지를 확보했다. 태양을 매일 바라보는 지구인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태양 중심부 ‘원판’만 정면으로 관측해 왔을 뿐, 자전축 상단과 하단에 위치한 극지는 거의 옆모습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관측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태양 활동의 핵심 퍼즐로 꼽히는 ‘극지 자기장’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솔라 오비터는 2020년 2월 발사 이후 태양 적도면(황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차례 금성을 스윙바이(중력 도움 비행) 했다. 올해 3월 남극, 4월 북극 상공을 차례로 통과하며 고각 관측에 성공했다. 임무 말기에는 궤도 경사가 33도까지 올라가 태양 극지를 정면에 가깝게 조망할 수 있다. ESA 프로젝트 과학자인 다니엘 뮐러 박사는 “수십 년간 태양 연구의 블라인드 스폿이던 극지를 처음으로 해상도 높게 촬영했다”며 “현재 태양 활동 주기(11년)의 최대기에 돌입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태양은 거대한 플라스마가 소용돌이치며 자기장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활동 최저기에는 거대한 막대자석처럼 북·남극이 뚜렷하지만, 흑점이 급증하는 최대기에는 잔여 자기장이 극으로 이동해 기존 극성(極性)을 상쇄하며 국소적인 N·S 패치가 뒤엉킨다. 솔라 오비터의 극지 자장 지도는 이 혼란상을 그대로 포착했다. 이러한 자기장 재편은 방사선 플레어·코로나 질량방출(CME) 같은 폭발적 태양 활동을 촉발해 지구 전력망, 통신·항법 위성, 우주비행사 안전에 직간접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극지를 관측해 ‘우주 일기예보’ 정확도를 높이고자 했다.
태양 극지 상공을 처음 비행한 탐사선은 1990년 발사된 NASA·ESA 공동 미션 ‘울리시스(Ulysses)’다. 당시 울리시스는 입자·자기장 장비로 귀중한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카메라가 없어 이미지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솔라 오비터가 고해상 카메라와 분광기, 자력계 등을 통해 첫 극지 사진을 전송하면서 울리시스의 숙제가 30여 년 만에 풀린 셈이다. 이번에 공개된 초기 이미지는 세 가지 탑재체가 촬영한 예비 데이터로, 본격적인 과학 자료는 올 가을부터 지상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연구진은 극지 자기장, 플라스마 흐름, 고에너지 입자 등을 종합 분석해 차세대 태양 활동 모델을 구축하고, 태양풍·CME 예측력을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태양 관측 400여 년 만에 첫 극지 직촬영이 현실화되면서, 인류는 우리 별의 숨겨진 얼굴과 그 변덕스러운 기상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손에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