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초소형 입자 두 개를 잇는 보이지 않는 힘의 끈이 팽팽히 당겨지다 끊어지는 순간, 잠재돼 있던 에너지가 분출된다. 입자물리학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이 과정을 양자컴퓨터가 최초로 실시간 재현했다. 4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은 “고전컴퓨터가 풀 수 없는 양자계를 양자컴퓨터가 풀어낸” 또 하나의 이정표로 평가된다.
연구에는 업계와 학계가 손잡았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스타트업 큐에라컴퓨팅(QuEra)과 구글 퀀텀 AI 랩이 각각 2차원 전기장 속 ‘끈’(string)을 구현, 그 생성·진화를 관측하는 실험을 독립적으로 수행했다. 큐에라팀은 ‘아킬라’(Aquila) 양자컴퓨터의 냉각 원자 256개를 벌집 모양으로 배열해 전기장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흉내 냈다. 원자 간 전기적 인력이 자연스레 시스템을 낮은 에너지 상태로 이끌도록 설계해 실제 물리계와 유사한 ‘자연 진화’ 과정을 관찰했다. 반면 구글팀은 초전도 큐비트 70여 개를 탑재한 ‘사이커모어’ 칩에서 전기장을 디지털 방식으로 코딩했다. 연구진이 단계별로 큐비트를 조작해 계산 과정을 ‘수동 재생’한 것이다.
두 실험 모두 끈의 강도, 장력 등을 임의로 조절하며 시나리오를 달리했더니, 특정 조건에서 끈이 일순간 붕괴하며 입자 쌍이 자유 입자로 ‘탈갇힘(deconfinement)’되는 현상이 포착됐다. 튜닝 값을 바꾸면 끈이 탄성체처럼 늘어났다 수축하거나 아예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기도 했다. 뮌헨공대 프랑크 폴만 교수(구글팀 공동저자)는 “전기장 안에서 고무줄처럼 연결된 입자가 상황에 따라 풀리거나 엉기는 복잡한 양자역학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강한 상호작용(쿼크를 결합하는 힘)까지 다루는 3차원 시뮬레이션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맥스플랑크 양자광학연구소 모니카 아이델스부르거 박사는 “최근 양자 시뮬레이션 분야의 발전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는 양자컴퓨터로 강한 상호작용을 1차 재현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구진은 큐비트 대신 여러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큐디트(qudit)’를 도입하거나, 보다 대규모 양자 하드웨어를 적용해 복잡계 시뮬레이션 정밀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양자컴퓨터가 ‘우주를 이루는 기본 힘’을 실험실에서 직관적으로 보여줄 날이 한발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