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숨은 질량’ 가운데 절반을 넘게 차지하던 보통(바리온) 물질의 행방을 마침내 밝혀냈다. 강력한 전파 섬광인 초고속 전파폭발(Fast Radio Burst·FRB)을 이용해 은하와 은하 사이를 채운 극도로 희박한 가스를 계측한 결과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가운데 85%가 정체 모를 암흑물질이고, 나머지 15%만이 원자 등으로 이뤄진 보통 물질이다. 그러나 허블망원경 등 관측 결과를 종합해도 보통 물질의 절반가량이 보이지 않아 천문학계는 ‘바리온 실종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 이는 은하 주변 거대 헤일로나 은하 간 공간(성간·은하간 매질)에 너무 희박하게 퍼져 있어 기존 방법으로는 탐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문학센터 등 국제연구진은 FRB 69건의 출발 은하를 정확히 찾아내고, 지구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광로(光路)를 따라 존재하는 물질량을 계산했다. FRB는 수 밀리초 동안 태양 30년치 에너지를 내뿜는 정체불명의 전파 폭발로, 경로 중 물질을 통과하면 파장이 지연·분산된다. 연구팀은 이런 ‘빛의 굴절’을 이용해 전자 밀도를 역산, 보통 물질 총량을 계측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언밸리 전파천문대의 ‘딥 시놉틱 어레이(DSA)’가 39건, 서호주 ASKAP 전파망원경 등이 나머지를 제공했고, 하와이 켁·팔로마 광학망원경으로 적색편이를 측정해 거리를 확정했다. 가장 먼 FRB는 91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왔다.
그 결과 전체 바리온의 76%가 은하 사이 공간에, 15%가 은하를 둘러싼 거대 헤일로에, 9%가 별·차가운 가스로 갇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첨단 우주 시뮬레이션 예측과 일치하지만, 실제 관측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FRB는 은하간 매질을 비추는 손전등”이라며 “빛이 지연된 정도를 정밀 측정하면 보이지 않던 가스의 ‘그림자 무게’를 달 수 있다”고 밝혔다. 향후 네바다 사막에 건설될 차세대 전파망원경 DSA-2000이 가동되면 매년 1만 건의 FRB를 포착·위치추적할 수 있어, 우주 보통 물질 지도 작성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