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 멸망은 운석 탓?… 화제 끌던 논문 결국 철회, ‘보도자료 과학’이 남긴 교훈
소돔 멸망은 운석 탓?… 화제 끌던 논문 결국 철회, ‘보도자료 과학’이 남긴 교훈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2021년 9월 “청동기 시대 사해 인근 도시를 휩쓴 초대형 운석 폭발이 성경 속 소돔·고모라의 파멸을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렸다. 저자들은 요르단 강 동쪽 유적 ‘탈 엘하맘’(Tall el-Hammam)의 녹은 토기·벽돌 등을 근거로 “툰구스카급(1908년 시베리아 대폭발) 이상의 공중폭발”을 주장했고, 전 세계 주요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발표 첫 주 조회 수만 25만 회를 넘기며 ‘바이럴 논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3년 만인 지난 4월, 해당 논문은 공식 철회됐다. 편집진은 “자료가 결론을 뒷받침하지 못했고, 디지털 이미지 조작 정황 등 신뢰성에 중대한 문제가 발견됐다”며 철회 사유를 밝혔다. 독립 연구자들이 제기한 데이터 오류·분석 결함·연구 방법 부적절성 등이 결정적이었다.

논문 저자들은 발표 당시 세 차례 기자회견과 ‘소돔·고모라’라는 성경 키워드로 대중적 관심을 최대화했다. 하지만 논문 내용은 멀쩡한 암석 시료를 ‘유리화된’ 잔해로 해석하거나, 미확인 증거를 현장 사진에 과도하게 강조하는 등 과학적 오류가 다수 드러났다. 전문가 검증 과정이 덜 끝난 상태에서 언론 보도부터 이뤄지는 ‘보도자료 과학’의 전형적 사례라는 지적이다. 과학계는 사실 확인과 재현성을 중시한다. 독립 연구팀의 후속 분석이 동일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초판 논문은 수정·철회 대상이 된다. ‘소돔 운석폭발설’은 대중적 파급력이 컸지만, 최종 관문인 합의(컨센서스)를 통과하지 못하고 역사 속 ‘잘못된 믿음’ 목록에 합류했다.

대중 인식에서 ‘운석으로 멸망한 소돔’ 이미지는 이미 각인됐다. 미국 퀴즈쇼 ‘제퍼디!’(Jeopardy!)가 2022년 이 내용을 문제로 낼 정도였다. 일부 종교‧음모론 커뮤니티는 여전히 “과학계가 진실을 묻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믿음 자체가 즉각적 위해를 주지는 않지만, 무분별한 유포는 우주위험 대응 정책까지 흔들 수 있다. 실제 소행성 충돌 위험을 ‘신의 뜻’으로 치부해 행성 방어(planetary defense) 투자에 반대한다면, 인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전문가들은 “과학은 다수결이나 조회 수로 진위를 가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데이터를 공개하고 동료 검증을 거쳐 반증을 허용해야 비로소 지식이 정립된다는 것이다. 개인 건강을 좌우하는 백신 안전성부터 기후변화 대응까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사회 전반의 위험을 줄인다.

탈 엘하맘 사례가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화려한 헤드라인보다 중요한 것은 ‘검증된 정보’다. 첨단 의학이나 우주 과학처럼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일수록, 언론과 학계 모두 신중한 해석과 투명한 검토가 필요하다. 과학은 이야기의 매력으로가 아니라, 증거와 논리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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