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표명하면서 양국의 우주 협력이 다시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러시아의 퇴출은 실수였다”고 언급하며 제재 완화를 시사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한 대러 제재·관세는 과거 행정부보다 ‘느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주 분야에서 양국은 여전히 ‘전략적 공존’ 상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러시아 로스코스모스는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 초기부터 30년 넘게 동행해왔다. 올해 4월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열린 양측 고위급 회담에서도 ISS 공동 운영과 ‘크로스 플라이트’(미우주인이 러시아 소유유인선 탑승, 반대의 경우도 포함)를 2027년까지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NASA는 “ISS는 2031년 계획된 퇴역 시점까지 안전 운용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문제는 ISS 이후다. 미국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로 2026~2027년 달 유인 착륙과 ‘게이트웨이’ 궤도 정거장 건설을 추진 중이지만, 러시아는 서방 제재로 독자(혹은 중국과 공동) 노선을 택했다. 현재 로스코스모스는 2030년대 중‧후반 달 유인 탐사를 목표로 7단계 로봇·유인 탐사 일정을 발표했으며, 중국과 ‘국제달과학연구기지(ILRS)’ 구축에 뜻을 모으고 있다. 러시아 과학계는 금성 탐사에서 미·러 협력이 재개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친다. 구소련 시대 ‘베네라’ 시리즈로 유일하게 금성 착륙선 운용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S) 우주연구소의 레프 젤레니 수석연구원은 “양국 모두 금성에 큰 관심과 탐사 계획을 보유했다”며 “아카데미 차원의 학술 교류가 먼저 재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경제는 국제 제재와 전비 부담으로 위축됐고, 우주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차세대 유인선 ‘오렐’ 시험비행은 2023년에서 2028년 이후로 밀렸고, 초대형 발사체 ‘예니세이’ 개발도 예산 부족으로 중단 상태다. 지난해 8월 독자 추진한 달 착륙선 ‘루나-25’는 착륙 직전 추력을 잃고 충돌해,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만 키웠다. ESA(유럽우주국)는 러시아와 추진해온 화성 탐사·달 극지 로버 등 공동 프로젝트에서 잇따라 손을 뗐고, NASA도 러시아제 RD-180 엔진을 2024년부로 전량 대체하며 ‘탈러시아’ 행보를 굳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제공할 ‘기술·재정적 당근’이 줄어 양국 대형 협력이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러시아 항공우주 전문 분석가 바딤 루카셰비치는 “예니세이 로켓과 오렐 우주선, 달 유인선이 모두 예산난으로 지연되며 러시아의 협상력이 약화됐다”고 진단했다. 반면 일각에선 미국이 예산 감축 압박을 받을 경우, ISS 운영 경험이 풍부한 러시아의 기술 자산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미·러 우주 협력의 미래는 지정학·경제 변수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우주정거장 시대를 함께 연 두 나라가 달·화성·금성에서도 손을 맞잡을지, 각자의 궤도로 멀어질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