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파괴하는 행성?…별에 초거대 플레어를 일으켜 ‘가스 껍데기’ 잃는 목성형 천체 발견
자신을 파괴하는 행성?…별에 초거대 플레어를 일으켜 ‘가스 껍데기’ 잃는 목성형 천체 발견

[미디어파인 = 이상원 기자] 우리 은하 400여 광년 밖 전갈자리-센타우루스 성협에 위치한 젊은 별 HIP 67522 주변에서 ‘행성이 별을 때린다’는 전례 없는 현상이 포착됐다. 네이처 26일자(현지시각) 논문에 따르면, 이 별을 돌고 있는 목성 크기의 가스행성 HIP 67522 b가 공전할 때마다 숙주별 표면에 태양의 수천 배 에너지를 지닌 초강력 플레어를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네덜란드 전파천문연구소(ASTRON) 에카테리나 일린 박사팀은 NASA의 TESS, ESA의 CHEOPS 위성 자료를 분석해 별빛 밝기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행성의 공전 주기(약 1.6일)에 맞춰 거대한 플레어가 규칙적으로 터지는 패턴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행성이 별 가까이를 스칠 때 강력한 자기장 고리를 자극해 에너지 파동을 표면으로 내려보내고, 이것이 폭발적 플레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플레어가 행성 스스로에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HIP 67522 b는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것보다 6배나 많은 고에너지 방사선에 노출돼 대기를 계속 뜯기고 있다. 연구진은 “현재 목성급인 행성이 약 1억 년 뒤에는 해왕성급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별의 자기 활동을 행성이 증폭시킨다는 가설은 있었지만, 실제 관측 증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원자력·대체에너지위원회(CEA) 천체물리학자 앙투안 스트루가렉 박사는 “매우 설득력 있는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향후 플레어 패턴을 분석해 ‘보이지 않는 행성’을 찾아내는 새로운 탐사 기법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HIP 67522 b보다 먼 궤도를 도는 두 번째 행성과 비교해 대기가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지, 플레어를 촉발하는 정확한 물리 과정이 무엇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일린 박사는 “비슷한 시스템을 더 찾아내 통계적 이해를 넓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다. 이번 발견은 별뿐 아니라 행성도 ‘능동적 플레이어’로서 서로의 진화에 깊이 관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외계 행성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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